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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 전시의 장, 전국체육대회





최근 전국체육대회는 중계 카메라에 비쳐지는 텅 빈 지방 공설운동장 관중석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시들해진 열기와 참가선수들 만의 잔치로 전락한 느낌이다. 그러나 제3공화국시절 전국체전은 한 해 국가 행사 중 가장 성대한 것이었다. 이영만(2006.10.18)의 글은 당시 전국체전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체력이 국력’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한 해의 최고행사는 10월의 청명한 가을빛 속에 열리는 전국체육대회였다.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전략 속에 고장을 대표하는 건각들은 대회 수개월 전부터 합숙을 하며 필승을 다짐했고 시·도 선수단들은 승리를 위해 무리한 스카우트전까지 감행했다. 체전 개최 도시는 행사를 빛내기 위해 여대생 또는 여고생을 동원하여 화려한 카드섹션과 매스게임 등을 준비했다. 임명직이었던 이들에게 체전의 성공은 곧 출세의 지름길. 때문에 열 일 제치고 체전에 몰두했으며 실제로 체전을 잘 끝낸 덕에 많은 시·도지사들이 중앙정부의 요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통령은 체전의 필수 참석자였다. TV는 본부석 중앙에 자리잡은 대통령의 모습을 수시로 카메라에 담고 개회식부터 폐회식까지 생중계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유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스포오츠 생활화의 기수’라는 휘호와 우승배까지 ‘하사’하며 열기를 북돋웠다. 신문들도 20~30여명의 특별취재단을 구성, 비중있게 보도했다. 체전기간 중 일절 다른 행사를 하지 못하게 했으므로 달리 취재할 것도 없긴 했다.

3공화국 당시 7년간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민관식(재임기간 64.1.19~71.7.10)은 전국체전의 지표를 네 가지로 설정하였다. ① 국민의 연간 체육 활동의 결산과 평가의 기회로 삼는다. ② 국민의 협동, 단결심을 다짐하는 바탕으로 만든다. ③ 국민체육의 생활화를 이룩하는 계기를 만든다. ④ 국력의 발전상을 과시하는 시위적인 역할을 한다. 전국체전의 목표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 슬로건은 1970년제51회 대회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굳센 체력, 알찬 단결, 빛나는 전진'이었다. 이 슬로건에는 제3공화국의 스포츠를 통한 국력 집결이라는 목표가 적나라하게 반영되어 있다(허진석, 2010: 173). 즉, 전국체전은 정부의 발전국가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과시하고 전시 할 수 있는 장으로서 스포츠제전이 동원된 결과였다. 무엇보다 시․도 간의 치열한 경쟁구도는 엘리트스포츠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되며,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정부차원의 치밀한 흥행전략이 추진되었음은 물론이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이루어진 성화봉송, 카드섹션 및 매스게임과 같은 화려한 개막행사는 그 예이다. 개막식의 카드섹션에는 '수출 100억불 달성'과 같은 정권의 성취를 찬양하는 문구와 박정희 초상이 전시되어 살아있는 군주를 영웅화하고 찬양하였다.


허진석(2010)은 박정희의 통치 이념을 철두철미하게 반영한 민관식의 전국체육대회 운영 스타일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대회를 1969년 제50회 전국체육대회로 지목한다. 이때부터 전국체전의 분위기 고조를 위한 전국일주 방식의 성화 봉송이 이루어졌고, 카드섹션 및 매스게임 같은 화려한 개막행사도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정권의 뜻대로 전국체전의 열기는 고조되었고, 지나친 양적 팽창으로 인해 지방에서 대회를 개최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른다. 국가 제일의 행사로 치러진 전국체전이 제3공화국 말기에서 제4공화국 유신정권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절정을 이룬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최소민주주의 체제로 불리던 제3공화국에서 노골적인 독재를 선포한 1972년 10월 유신의 선포로 이어지는 이 시기에 보다 정권의 성공 이미지를 보다 과장되게 전시해야 했음은 물론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1972년 제53회 전국체육대회부터는 소년체육대회를 분리하여 개최하게 되는데, 표면적 이유는 소년들이 성인들의 그늘에서 경기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고, 과열 경쟁에 휘말려 체육의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손환, 2006; 허진석, 2010: 176 재인용). 그러나 소년체육대회의 분리로 자체적인 경쟁시스템 속에 놓이게 된 학원스포츠에 본격적인 엘리트화가 진행되어 갔음은 쉽게 예상이 가능하다.

전국체육대회와 전국소년체육대회의 성격은 공히 민족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었는데, 이를 대통령 박정희의 개막축사를 통해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우리 소년, 소녀들이 몸과 마음을 튼튼히 닦고, 또한 슬기롭고 건강하게 자랄 때, 비로소 우리나라는 더욱 튼튼하고 부강한 나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지금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각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에게는 어떠한 시련과 어려움도 거뜬히 헤치고 나갈 수 있는 강건하고 진취적인 국민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것입니다. ... 규율과 질서를 존중하고 협동정신과 단결력, 그리고 용기와 투지를 함양하여 더욱 튼튼한 마음을 길러야 합니다. ... 우리는 지금 모든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국력 배양을 위해 줄기찬 정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루 바삐 민족중흥을 이룩하여 보다 살기 좋은 나라를 건설하고 조국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한 것입니다(월간체육, 1974).

위에서 살펴본 박정희가 청소년들에게 던진 메시지에는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무한한 투지와 용기 같은 정신력과 ‘국력’인 체력을 가지고 한 덩어리가 돼서 몸과 마음을 국력 배양에 바치는 ‘강건하고 진취적인 국민’의 이미지가 잘 묘사되어 있다(박노자, 2005: 39). 개인을 국가에 예속시키는 것은 성인이나 청소년이나 예외가 없었다. 이처럼 박정희 정권은 전국체전이나 전국소년체육대회와 같은 스포츠행사를 통해 스포츠를 정치․사회적 동원을 위한 기제로 활용했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인 엘리트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에서 전국체전은 더 이상 중요하지도, 국민적 관심을 모으지도 못하는 이벤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올림픽, 월드컵 등 각종 국제스포츠이벤트를 통해 충분히 엘리트스포츠의 우수성을 과시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있고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프로스포츠가 운영되면서 끊임없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전국체전은 국민들에게 최고의 관심사로 제공되었고, 정권의 위상은 축제의 분위기 속에 효과적으로 전시되었다. 이를 통해 박정희 시대의 전국체전은 일본의 메이지 신궁 경기대회나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과 같이 발전된 국가상을 전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대구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소년스포츠대회에서 100억불 달성 매스게임


1962 10 24 대구 제43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 대통령 권한대행시절과 10 26이 있었던 마지막 79년의 박정희

2011년 한국스포츠사회학회 특별세미나(통합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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