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이 흥국생명으로 복귀한 이유: 경쟁 균형과 선수 권리 사이의 줄다리기
김연경이 국내 리그로 돌아왔다. 지난 2009년 일본 진출 이후 터키와 중국리그를 거쳐 11년 만이다. 계약을 체결한 팀은 2005년 입단했던 흥국생명. 가는 곳마다 우승을 몰고 다녔고,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로 성장한 김연경의 한국 무대 컴백이 프로배구 흥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하지만, 국가대표 주전 레프트 이재영과 세터 이다영까지 보유한 흥국생명에 김연경까지 가세하면서 자칫 뻔한 승부가 되지 않을까란 우려도 있다. 그렇다면 김연경은 데뷔한 지 15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 드래프트에 참여하거나 자유계약 선수로 복수 구단과 협상을 하지 않고, 왜 흥국생명으로 돌아가야만 했을까. 본고에서는 김연경을 묶어 놓은 보류조항을 중심으로 선수의 권리와 경쟁 균형의 모순적 조화의 필요성에 대해 살펴본다.
보류조항: 다른 팀과는 협상할 수 없어!
김연경이 복귀 팀이 흥국생명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그가 보류조항(reserve clause)으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가령 당신이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최저 연봉 3천만 원을 받고 A구단에 지명되어 데뷔 첫해부터 타율 4할에 홈런 40개, 도루 20개를 기록하며 야구 판을 뒤흔들었다고 치자. 이제 시즌이 끝나면 다음 시즌 전력 강화를 모색하는 여러 팀이 돈 보따리를 풀어 접근할 것이고 당신에게 남은 일은 가장 좋은 계약 조건을 제시하는 팀을 선택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프로스포츠가 자유 경쟁 시스템을 따른다면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프로 2년 차를 맞이할 당신이 유일하게 연봉 협상을 벌일 수 있는 팀은 소속구단 A팀. 보류조항이란 이렇듯 구단이 ‘보류 선수’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예를 들어 KBO의 경우 63명까지 보류선수로 묶을 수 있다) 구단이 그 선수들과 유일하게 독점적 계약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보류란 구단이 독점 협상을 벌이기 위해 선수를 ‘따로 떼어 놓은(reserved)’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렇듯 보류조항은 구단의 선수 독점계약 권리 인정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프로야구의 대졸 신인의 경우 8시즌, 고졸 신인의 경우 9시즌까지 보류조항의 적용 대상이며, 프로농구의 경우 5시즌, 프로배구의 경우 6시즌까지 구단은 선수를 보류권으로 묶을 수 있다. 김연경이 흥국으로 컴백한 이유는 오랜 임대기간을 보냈지만 데뷔 후 KOVO에서 4시즌을 뛴 기록만 인정하여 흥국생명의 김연경에 대한 보류권이 아직 2년 더 남았다고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는 이 해석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수를 경제활동을 하는 노동자라고 했을 때 보류조항은 헌법에 명시된 직업(직장) 선택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노동자의 이직을 제한한다는 면에서 독점금지법에도 위배될 소지가 있다. 또한 독점 협상권을 가진 구단에 불만이 있어도 오랫동안 이적이 불가능하니 젊은 시절 바짝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선수의 입장에선 발목을 잡는 독소조항이라 할 수 있다.
경쟁 균형: 경쟁의 불확실성이 보장돼야 선수도, 리그도 산다!
한편 구단의 입장은 선수들과는 전혀 상반된다. 우수 선수가 시즌이 끝날 때마다 시장에 나오고 복수의 구단이 영입 경쟁을 벌인다고 생각해 보자. 선수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자금력이 튼튼한 구단이 우수 선수를 싹쓸이해가는 상황이 생겨나며, 프로스포츠 흥행의 핵심 요소인 ‘승부의 불확실성’은 크게 손상되지 않겠는가. 프로스포츠에서 한 팀이 무적함대를 이루어 한 시즌 전승을 거두고, 10시즌 동안 연속 우승을 하는 리그에 대중은 열광할 수 있을까. 이처럼 팀 간 과열 경쟁에 따른 선수 몸값 폭등 그리고 리그 내 승부의 불확실성이 붕괴하는 것에 대한 협회와 구단이 대항 논리로 제시한 개념이 바로 ‘경쟁 균형(competitive balance)’이다. 경쟁 균형의 논리에 따르면 프로스포츠의 흥행은 스타 선수를 한 팀에 모아 무적함대를 구성할 때 이루어지지 않는다. 구단들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 우수 선수 유치를 위해 자유 경쟁을 벌일 때 가능한 것도 아니다. 비슷한 전력의 여러 팀이 알 수 없는 승부를 펼칠 때,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선전을 펼치고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둘 때, 즉 경쟁 균형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프로스포츠 리그는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 균형과 선수 권리의 균형감각 필요
문제는 경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프로스포츠의 구단과 협회는 보류조항 이외에도 2중, 3중, 4중의 잠금장치를 가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인선수 드래프트’, ‘샐러리 캡’, ‘임의 탈퇴’, 유럽 축구의 ‘재정적 페어플레이’ 등은 모두 경쟁 균형의 당위성 위에 세워진 규정들이다. 그리고 이 규정들은 구단의 이해(interests)를 절대적으로 대변하면서 구단과 이해가 상충하는 선수의 권리를 옥죄는 제도로서 작동한다. 그렇다면 프로스포츠 선수가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을이 아닌 갑의 위치를 전유할 수 있는 제도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보류조항의 반독점성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자유계약 선수 제도(free agent)가 유일할 것이다. 선수들이 노동 협상을 마음 놓고 벌일 수 있는 경우는 평생에 한두 번 찾아올까 말까 한 FA 시기 밖에 없다는 얘기다.
프로스포츠는 리그가 경쟁 균형을 잃지 않아야 흥행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선수의 권리가 지나치게 제한된다면 그 리그는 공정하다 말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스포츠를 직업으로 삼고자하는 어린 선수들의 직업 선택 이유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이렇듯 프로스포츠는 구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쟁 균형’과 ‘선수 권리’란 모순된 이해가 서로 충돌하는 시장이다. 우리는 어떻게 리그의 경쟁 균형을 유지하며 선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앞으로 이 분야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얼마 전 막을 내린 ‘2020 MG 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 대회’에서 김연경이 가세한 흥국생명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으며 결승에 올랐다. 미디어는 흥국생명의 무손실 세트 우승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흥행 몰이에 나섰다. 그러나 공은 둥글고, 승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며, 스포츠의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법. 절대 열세가 예상되던 GS칼텍스가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이란 말을 무색케 하며 흥국생명을 3:0으로 완파했다. 개인적으로 GS 팬인 나는 그 승리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두는 것 이게 바로 스포츠의 묘미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건 세계적인 스타 김연경의 국내 복귀에도 불구하고 한국 프로배구 KOVO의 경쟁 균형이 무너지지 않았고, 여전히 경기의 불확실성을 지속하는 리그란 점을 코보컵 결승을 통해 증명했다는 사실이다. 김연경이 가세한 KOVO 2020-2021시즌, 아무도 모르는 승부의 세계에 주목해 보자.
서울스포츠 2020년 10월호 No. 360 스포츠잡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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