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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대한체육회의 조직 정비

최종 수정일: 6월 28일

   

앞 장에서 1960년대 중반 대한체육회가 주관하는 대외경기 및 재원 몰아주기 등의 문제가 학교체육의 가치를 왜곡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체육교수와 체육교사를 중심으로 대한학교체육회를 재정비하고 실질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장에서는 1965년 사단법인 인가 이후 사무국을 포함한 학교체육회의 조직 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 이종택 구술 3: 교직계가 나서서 학교체육의 중요성을 주장하게 되었어요. 체육교수들, 서울대 이병위 선생(1906~1973), 고려대학교 김오중 선생(1919~2005), 경희대 문현주 선생(1914~1968), 이분들이 이론이 있는 양반이거든. 이런 분들이 중심이 되어서 학교체육은 올바른 정도를 가야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조직이 있어야겠다. 대한체육회는 도저히 못 믿겠다. 경기단체도 못 믿겠다. 그런데 말만 무성하고, 이름만 있을 뿐 사무처도 없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실질적인 이론적, 행정적 뒷받침을 한 게 김종선 선생과 이긍세 선생이에요. 이 두 분이 실질적으로 대한학교체육회를 만든 필드 워커로 일한 거죠. 그래서 학교체육회가 정식으로 발족이 된 것이 1966년 1월 24일입니다. 그 전만 해도 준비위원회랄까...... 그 준비위원회의 책임자가 누구냐 하면 김종휘라고 나중에 사무처장이 되는데, 그 양반이 중심이 되어서 이긍세 선생, 김종선 선생, 그리고 나(이종택), 이렇게 모여서 학교체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이래서 드디어 1966년 1월 24일 출발을 시켰어요.

     

<구술 3>은 대한학교체육회 구성에 참여한 인물에 대한 증언을 담고 있다. 1965년 3월 20일, 조선일보의 '대한학교체육회 발족'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기사에는 회장 김종익, 부회장 문영현, 김준기, 이사장 최인범, 및 이사로 박준용, 조병옥, 최영석, 원종균, 함기영, 나현성, 맹재홍, 최홍주, 이내균 등의 이름이 언급된다. 그러나 이종택 선생은 신문에 보도된 임원진 명단과 달리, 이병위, 김오중, 문현주 등 체육대학 교수와 김종휘, 이긍세, 김종선 등의 인물을 언급한다. 이와 관련하여 '말만 무성하고, 사무처도 없는 상태였다'는 진술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1965년 사단법인 발족과 별도로, 이병위, 김오중, 문현주 등 체육대학 교수들이 주축이 되었고 김종휘, 이긍세, 김종선, 이종택 선생 등이 현장 실무자로 참여하여 사무처를 꾸렸으며, 1966년 1월 24일 사무처 활동을 시작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음은 회장 추대와 이사회 구성에 관한 진술이다.

     

# 이종택 구술 4: 그렇다면 학교체육회 회장을 누가 할 것이냐. 역시 권력이 좀 있는 사람이 해야겠다. 그 당시 김종필씨가 셌거든. 그래서 김종필씨의 두 번째 형님인 김종익씨를 모셔야겠다...... 그 양반이 점잖은 분이에요. 그래서 학교체육이 정도로 가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던 분이거든요. 그래서 그 양반을 회장으로 추대했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부회장을 모시는데 이병위 선생, 김오중 선생, 유근석 선생, 문현주 선생, 김명목 선생들을 모셨고, 서울대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에 주연우, 조태열 선생님이 중심이 되었고, 현우영, 권명철, 최삼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골고루 이사회를 구성했는데. 체육교사나 체육교수 외에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이 순수 100% 혈통으로 이사회를 만들었어요. 이사회가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서로 다 아니까. 또 어른이 있었단 말이에요. 이병위, 김명목 같은 분들이 한마디 하면 사람들이 반대를 못 해요. 또 그분들이 틀린 말은 안 해. 점잖게 한 마디 하고, 항상 회장은 이병위 선생이나 김명목 선생 같은 분들의 말들을 존중한다고. 회장이라고 으스대지 않았다고...... 그래서 잘 운영되었어요.

     

위 구술에 등장하는 “권력이 좀 있는 사람이 해야겠다...... 김종필의 둘째 형 김종익씨를 회장으로 추대했다”는 진술은 대한체육회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포석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당시 신문보도에 따르면 “새로 발족한 학교체육회는 그동안 대한체육회와 성격상 미묘한 알력 때문에 잡음을 일으켜 왔으나, 대한체육회가 제시한 6가지 조건을 수락하고, 체육회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문교부의 인가를 얻었다”는 내용이 나온다(조선일보, 1965.03.20.). 즉, 법인으로 인가되기 이전부터 대한체육회는 학교체육회의 움직임을 견제했음을 알 수 있다. 김종익을 회장으로 추대한 것은 대한체육회의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학교체육회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또한 학교체육회의 임원진은 전적으로 체육교육 전문가인 학교 선생님과 체육교수로 구성하였는데 이는 외부 세력의 간섭 없이 학교체육의 본질을 유지하려고 했던 학교체육회의 이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 대한체육회가 학교체육회에 제시한 6가지 조건이란 “학교 체육회가 대한체육회와 유대를 갖고 학생층의 신인선수를 발굴하면 대한체육회에 추천하고, 가능하면 대한체육회 산하단체에 등록된 선수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전체학도의 체위향상과 체육활동에 주력한다”는 것 등이었다(조선일보, 1965.03.20.).


출처: 한승백(2024). 체육원로 인종택 선생의 구술을 통해 본 1960년대 대한학교체육회의 이상과 도전 그리고 역동.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 37(2),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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