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참여
최종 수정일: 3월 1일
지난 수요일, 대한축구협회장 선거가 있었다. 총 192명의 선거인단 중 183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정몽규 후보가 156표를 얻어 네 번째 회장직에 당선되었다. 신문선 후보는 11표, 허정무 후보는 15표를 획득했으며, 무효표는 1표였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체육정책학회의 추천을 받아 선거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허정무 후보의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인용된 뒤 다시 꾸려진 2차 선거운영위원회에 참여한 것이다. 선거 과정 전반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아, 운영위원회가 회의를 마칠 때마다 수십 건의 기사가 쏟아지는 게 조금은 흥미롭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내부자 입장이 된 만큼,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최근 축구협회를 향한 대중의 시선은 매우 차갑다. 지난해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로 인해 문체부가 정몽규 회장에 대해 자격정지 이상의 징계를 권고한 상황이다. 그런데 대중의 기대와 달리 정몽규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었으니 어떻겠는가. 선거 이후 ‘닫힌 선거’, ‘그들만의 리그’,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냉소적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쟁점은 정몽규 후보의 피선거권 문제다. 이와 관련해 신문선 후보가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는데, 문체부 감사 이후 정몽규 회장에 대해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요구한 사실이 있고, 협회 정관에 따르면 이는 임원의 결격사유에 해당하므로 후보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위원회는 정몽규 후보의 후보자격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선거운영위원회가 정몽규 후보의 피선거권을 전혀 심의하지 않았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며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정리해 보면, 문체부가 징계를 요구했으나 법원의 판단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고, 대한축구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유일하게 징계를 할 수 있는 기관인데 1월 23일 회의에서 행정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징계 여부를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운영위원회가 후보 자격을 선제적으로 박탈할 권한이 있을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였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위원회의 권한과 규정에 대한 이해보다는 ‘재벌 총수에게 꼬리를 내린 밀실 행정’이라는 프레임으로 매도되는 분위기를 목격하였다. 무슨 이유일까. 흔히 정치인이나 재벌과 같은 권력가들이 하는 일은 이미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며, 그에 관여하는 이들은 모두 매수되었다고 쉽게 지레짐작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선거인단 구성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이는 이번 선거가 ‘닫힌 선거’, ‘체육관 선거’, ‘그들만의 리그’, 심지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강하게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는 추첨식 간접선거(sortition-based electoral system)를 채택하고 있다. 정관상 선거인단을 최대 300명까지 확대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192명을 선정하였다. 선거인단이 300명에 미치지 못한 이유는 ‘회장선거관리규정’에서 직군별 배분 방식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의원, 지도자, 선수, 심판 등 각각의 직군에 인원을 할당하면 결국 200명에 못 미치는 선거인명부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일각에서는 “누가 참여하는지도 모르는 깜깜이 선거”라고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실상 선거인명부가 꾸려지면 그 정보는 바로 다음 날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고 각 후보에게도 전달된다. 깜깜이가 아닌 것이다.
“선거인단을 300명으로 확대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이는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반영하자는 취지이므로 누구라도 원칙적으로 동의할 법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선거 기간 중에 제안한다고 해서 당장 실현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선거인단 확대를 위해서는 정관 개정이 필요하고,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며 대한체육회의 승인도 필요하다. 아무리 타당한 주장이라지만 경기가 시작된 후 룰을 바꾸는 게 가능하겠나. 이런 주장은 선거의 안정성만 훼손할 뿐이다.
결국 선거인단을 500명, 1000명으로 늘리는 문제는 선거 기간의 반짝 주장으로 이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오랫동안 꾸준히 제기하고, 지속적으로 여론을 형성하며,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지금처럼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이런 주장이 반복된다면 이번뿐 아니라 다음 선거, 그다음 선거에서도 선거인단의 확대는 요원하다.
세 번째로, 축구계는 정몽규 회장 체제를 대신할 인물을 키워 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축구협회에 대한 비판이 단순한 감정적 반발에 그치지 않으려면, 구체적 대안과 실천 능력을 겸비한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나는 일방적이었던 이번 선거 결과가 이 질문에 대한 냉혹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수만 명의 사람들 중 무작위로 선정된 선거인단이 투표를 했는데, 그중 85%가 정몽규 회장을 선택했다. 사람들은 축구계를 정몽규가 구축한 빈틈없는 철옹성이라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얼마 전 있었던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보면, 대부분이 이기흥의 3선을 예상했지만 결국 유승민 후보가 당선되었다. 유승민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상징성과 IOC 선수위원 경험을 통해 국제적 역량을 쌓았고, 탁구협회장으로서의 행정 경험을 더해 선거인단의 신뢰를 얻어 냈다.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타깝지만 축구계는 유승민처럼 젊고 유능한 스포츠 행정가를 발굴하지 못한듯 하다.
수많은 후보군 중 무작위로 뽑혀 투표에 참여한 183명은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의 결정을 했을 것이다. 정몽규를 선택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그 156명을 '정회장의 울타리 안'에 갇힌 사람들로 매도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판단을 폄훼하는 오만한 태도일 뿐이다.
나는 축구협회와 같은 민간조직의 문제는 그 조직 스스로의 역량 강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닫힌 선거’라는 비판은 여러 측면에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 구조를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거기는 원래 그런 데야. 해보나 마나 뻔한 거지.”라는 냉소주의적 태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축구협회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문제 해결을 위한 공론화, 제도적 변화, 그리고 유능한 새로운 리더십의 발굴·육성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체부의 역할도 생각해 봐야한다. 대부분의 경우 문체부는 경기단체에 문제가 발생하면 어디선가 짠 ~ 하고 나타나 징벌을 때린다. 이런 역할도 필요하다. 그러나 대한체육회 산하의 많은 경기단체는 여전히 폐쇄적이고, 건강한 시민사회 조직으로서 역량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각 단체가 민주적이고 공정한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선거운영위원회에 참가하면서 없던 관심이 생겼다. 뭔가 적성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대한축구협회와 정몽규 회장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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