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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달린' 산

자동차들로 빼곡한 도로, 콘크리트 건물과 공해로 뿌연 하늘, 사람의 길은 자동차 길에 밀려나 버렸다. 그리고 문명에 일상이 얽매인 사람들은 자연 공간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그들에게 산은 문명의 각박함에서 벗어나 숨통을 틔우는 ‘자연’이다.


회색빛으로 물든 도시는 푸른빛을 내뿜는 산과 경계해 있다. 그렇기에 자연으로의 입장은 문을 전제한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지가 언제이고, 산에도 무슨 정문이 있느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일상 속 ‘문명인’에서 ‘자연인’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산으로 향하는 문턱을 지나야 한다. 그러나 문턱을 넘어 자연 공간인 산으로 들어서더라도 이제 또 다른 모습의 ‘문명인’을 요구하는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한다.


다음은 한 주간지에 실린 산악동호회의 모습이다. 문명과 경계를 이룬 산의 입구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띠는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산악회의 등산 날 집합 장소에서는 때 아닌 패션쇼가 벌어진다. 회원들이 저마다 형형색색의 아웃도어 브랜드를 입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산악회 총무인 문정애(56)씨는 “등산할 때 누가 어떤 아웃도어 등산복을 입고 왔는지도 화제가 된다”며 “새 등산복을 입고 오는 회원에게 어느 브랜드인지, 가격이 얼마인지 물어보는 것이 주요 관심사”라고 말했다. 문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아웃도어 등산복을 입고 나오는 회원 수가 많지 않았는데 최근 부쩍 늘어났다”며 “지금은 100% 아웃도어 브랜드의 등산복을 입고 온다”고 말했다. 그는 “(아웃도어 등산복의) 색상도 가지각색이고 디자인도 다양해서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덧붙였다(박정원, 박혁진, 2011).

2010년 발간된 국민생활체육참여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등산(16.2%)은 걷기(31.9%)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국민이 참여하고 있는 스포츠 활동이다(문화체육관광부, 2010). 등산의 인기와 더불어 아웃도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1993년 1,000억 원에 불과했던 아웃도어 시장은 2000년대 들어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더니 2006년에 1조원을 달성했다. 2006년부터는 더 폭발적 성장을 하여 2010년에는 3조원을 넘었고, 2011년의 아웃도어시장 총 매출은 4조원이었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규모가 되었다(박정원, 박혁진, 2011).


같은 시기 한국 산악 계는 상업주의 비판에 직면하였다. 후원사가 붙은 상업 등반이 성행하고 후원 기업들은 시장에서 경쟁자 관계이다 보니 이들 기업이 지원하는 산악인들도 덩달아 경쟁체제에 놓이고 지나친 업적위주의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등반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등반의 전 과정이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면서 자연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도전은 드라마로 각색되었다. 여성 산악인 오은선이 히말라야 14좌의 남겨진 마지막 봉우리인 안나푸르나에 오르는 과정은 KBS에 의해 생중계되어다. 그 순간 동행한 셰르파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메라 앞을 왔다, 갔다 하였고, 전문 산악인 출신도 아닌 KBS 카메라맨은 상황을 생중계하며 함께 정상에 올랐다. 미디어는 그 도전와 업적을 찬양하였지만 대중은 이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히말라야는 과연 오르기 힘든 곳인가” (김성규, 2010).

현대인에게 산은 대표적인 여가공간이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중적 공간이다. 산업시대 여가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특정 계층에 국한되었다면 이제 중산층으로 대변되는 폭 넓은 계층의 사람들이 여가를 향유하고 있고, 그 대표적인 활동은 등산이다. 부르디외(Bourdieu, 1979)에 따르면 등산은 전형적인 중산층의 스포츠이다. 건강증진을 위한 노력을 우선시 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하는 금욕적인 스포츠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등산 역시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중산층으로 부여하는 가장 폭넓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그런데 그들이 소비하는 아웃도어 제품은 지나치게 비싸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고어텍스, 쉴러, 쿨맥스 등 기능성 소재를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을 호가하는 의류는 스타마케팅에 따른 광고비를 감안하더라도 지나치다.


한국사회 등산객들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고가의 아웃도어 제품소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스포츠에 참가하는 여가계급(leisure class)이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고가의 상품을 소비한다는 베블렌이 말하는 과시적 소비일까. 아니면 ‘누군가 하니까 나도한다’식의 모방효과(bandwagon effect)에 따른 소비의 전염현상일까.


레비스트로는 인간은 자연적 존재이자 동시에 문화적 존재라는 이중적 모순을 안고 살고 있다고 했다. 자연과 문화를 대립 쌍에 놓은 인간이 문화를 통해 다른 동물과 다른 지위를 획득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산으로 대변되는 자연으로의 문턱을 넘어서도 우리는 여전히 문명으로부터 자연의 품에 안기지 못하는 듯하다. 소비자본주의에 점령된 산은 상품을 전시하는 장이 되었다. 산은 문명이나 기계적인 발달에 대한 대척점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스포츠보다 소비주의가 극한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비의 공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등산객들은 소비자본주의에 의해 가장 고도로 정교화된 자연이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무기력한 수용자들인가.


2012년 5월 18일

한국스포츠사회학회 특별세미나

경남대학교 본관 4층 대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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