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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아파트테니스장

최종 수정일: 2022년 1월 19일


# 사례 1. 강동구 S동 H아파트
1983년 지어진 이 단지는 5층으로 구성된 대형 저층 단지이다. 2010년 재건축 시공사를 선정 인가를 받아 2013년 시공을 앞두고 있다. 단지 내에는 코트가 2면이 있는데 그 코트는 테니스 동호회 회원들 30명 정도가 관리사무소를 통해 독점관리 하고 있다. 동호회 회원들은 모두는 아파트 주민들이다. 많은 오래된 아파트들이 그렇듯이 건물과 테니스장 사이의 공간이 거의 없이 붙어있어, 공치는 소리가 크게 난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동호회 회원들이 많이 모이는 주말이면 코트에서 술도 마시고 시끄러운 소리가 많이 나기 때문에 조용히 해달라는 이웃 주민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는다. 항의가 들어오면 조용히 한다고 하지만 곧 시끄럽게 되고 그것 때문에 동호인들과 주민들 간에 얼굴 붉히는 일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구체적인 얘기는 없지만 재건축이 들어가면 테니스장이 없어질 운명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정보제공자 정광용과의 인터뷰 재구성).

# 사례 2. 노원구 B동 A아파트
1995년에 준공한 20층 고층단지이다. 단지 내에는 클레이코트 2면이 있다. 박근우는 관리사무소에는 월 10만원씩 코트 사용료를 내고 동호회에는 월 5만원을 내고 레슨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대신 코트를 관리해주었다. 이 지역에는 주변 아파트 단지 마다 테니스 코트가 하나 씩 있는데 대부분의 관리코치를 두고 운영을 한다. 아침 5시부터 저녁 7시까지는 레슨을 하는 시간이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동호회 사람들이 테니스를 친다. 라이트가 있는 코트이고, 몇년전 수면권 보장에 대한 민원접수가 많아지면서 9시에는 소등을 해야 하는 규칙이 생겼다. 80년대 지어진 아파트들처럼 테니스장과 건물이 붙어있지는 않지만 사방이 막혀있기 때문에 소음에 대한 문제는 여느 아파트와 다르지 않다. 주로 소음에 관한 항의는 관리사무소 쪽에 민원을 넣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몇 년 전에는 레슨 할 때 경찰에 신고가 들어간 적이 있다. 대부분의 코치들은 소음에 대한 항의가 나올 경우 여기가 직장이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해 주민들의 이해를 구한다. 바로 옆 단지의 테니스코트의 경우 소음 등의 문제로 민원이 계속되자 3년 전에 인라인스케이트장으로 용도 변경하였고 다시 주차장으로 바꾼다는 말이 있다(정보제공자 박근우와의 인터뷰 재구성).

위 사례를 통해 아파트 테니스장이 사라지는 이유를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아파트 테니스장은 소음 등의 문제로 주거공간에 위치하기에 부적절하다. 아파트 테니스장은 건물에 둘러싸여 공치는 소리의 울림이 일어나는데 생활공간이다 보니 이에 대한 항의가 언제고 일어난다. 코트를 둘러싼 철망은 외관상 고급스런 단지 내 조경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야간에 켜 놓은 조명 등은 주민들의 수면권을 방해한다. 단지 내 시설이고, 사용자 또한 같은 주민인 경우가 많아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용도변경을 놓고 입주자들이 찬반 투표를 하거나 심한 경우 용도변경하려는 주민 측과 테니스장을 지키려는 동호인 측 간 소송이 벌어지기까지 한다. 1998년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아파트 단지 내 테니스장을 배드민턴장으로 바꾸고자 한 사건이 있었는데, 테니스장을 배드민턴장으로 바꾸는 것은 용도변경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청구가 기각된 사례(선고 99두455 판결, 2000.12.22), 테니스장을 없애고 헬스장을 설치해 용도변경을 하려했던 2011 부산지법의 사례 등이 이에 해당한다(부산지법 민사합의9부). 전자의 경우 고등법원에서는 원고인 동호회 측이 주민 동의가 없어 용도변경 신고가 무효라고 주장하였으나 주민 동의가 있었다고 판결하였고, 대법원에서는 테니스장을 배드민턴장으로 바꾸는 것은 용도변경이 아니라는 이유로 청구가 기각되었다. 후자의 경우 테니스장은 실외체육시설, 헬스장은 실내체육시설이기 때문에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실외체육시설을 설치하여야 하므로 위법한 결의라 하여 무효라고 판결된 적이 있었다. 한 평생 테니스 코치와 테니스장 경영인으로 살아온 정보제공자 김원종은 아파트 단지 내 테니스장의 설치를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두 번째 테니스의 대중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테니스장은 여전히 동호인 위주로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운영된다. 이는 어느 정도 숙련이 되어야 어울려 경기를 할 수 있는 테니스의 경기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아파트를 무대로 활동하는 테니스 동호회를 대상으로 그 하위문화적 정체성을 밝힌 한태룡(2003)은 외부와 구별되는 체계를 지닌 동호인 조직이 자신의 정체성을 담보하기 위해 구성원의 자격을 한정한다거나 외부조직과의 교류에 있어 그 대상을 제한하면서 배타성을 나타낸다고 밝힌바 있다. 이에 더해 관리 코치의 레슨 문제를 들 수 있다. 현재 대다수의 아파트 테니스장들은 관리자로서 코치를 고용하고 있다. 클레이코트인 경우 소금도 뿌려야하고, 롤러질, 브러시질도 해줘야하고, 돌멩이가 수시로 밑에서 올라오는 등, 여러 가지 관리를 수시로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외부 코치에게 관리를 맞기고 그에게 레슨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리 코치가 있는 한, 코치는 레슨을 해야 하는데 이 경우 레슨 대상자가 아파트 외부사람들인 경우가 있는 반면 정작 동호회 사람이 아닌 아파트 주민들은 단지 내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이 시설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이 연구의 정보제공자 정광용은 이 같은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테니스가 고급스포츠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스포츠로 변하긴 변했는데, 누구나 할 수 있는 스포츠 까지는 왔는데,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는 누구나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 단지 안에 테니스장이 있는데 사용을 못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관리하는 코치가 레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말에는 테니스 동호회사람들만 사용을 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초보자가 동호회에 바로 들 수도 없고. 그래서 레슨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테니스를 치고 싶은데 테니스를 칠 수가 없으니까, 동호회에 들기 위해서 코치한테 레슨을 받는 겁니다. 일반 주민들 입장에서는 쓰지는 못하는데 시끄럽기만 한 거죠(정광용, 34세).

오늘날 아파트 테니스장은 ‘대중성’과 ‘폐쇄성’이라는 두 가지 모순 가운데 위치해 있다. 고급 스포츠라는 전통적 입장에서 볼 때, 테니스장은 상류계급의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정보를 교환하고, 사교를 즐기는 폐쇄적인 장소이다. 그곳은 은폐된 입장권이 필요한 계급적 아비투스의 공간이다. 그런데 오늘날 테니스의 대중화는 대중의 인식체계 속에 그 빗장을 해체시켜 버렸다. 79년 이래 테니스장은 아파트 단지의 건설 시, 의무 설치하도록 한 몇 가지 옥외체육시설 가운데 가장 선호되는 시설이었다. 그 이유는 테니스는 곧 상류 사회 스포츠라는 대중의 인식체계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테니스장은 주거지의 가치를 높여주었고, 거주민들은 단지 내 테니스장을 통해 보다 품격 있는 주거환경을 상상하였다. 테니스가 대중화된 오늘날 새롭게 건설되는 아파트 단지 내 테니스장이 선택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중화로 인한 테니스의 차별성 소멸이 아파트 단지 내 테니스장의 입지를 오히려 위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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