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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승백

서평: 왜?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

최종 수정일: 2021년 12월 27일



책표지

스테판 지만스키 앤드루 짐벌리스트

스포츠의 사회문화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왜 전 세계가 열광하는 축구가 유독 미국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으며, 초강대국 미국의 대표 스포츠 야구는 어째서 세계화에는 실패했을까?"란 의문을 가져봤을 것이다. 이에 관한 가장 진부한 답으로 자본의 논리를 드는 경우가 많다. 야구를 비롯한 미국의 인기 프로스포츠가 광고 노출에 유리한 구조를 가진 반면, 작전타임 한 번 없이 45분을 진행하는 축구는 적합지 않다는 것. 즉, 돈이 지배하는 미국에서 축구는 적절한 스포츠가 아니며, 야구는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미국문화의 상징이란 정도의 설명이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기만 할까? 프로스포츠산업에 대한 자본의 관심이 미국에서만 적용될 리 만무하며, 야구가 제 1의 프로스포츠로 각광받는 일본은 미국과는 또 다른 배경이다. 국민소득 2000달러에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던 시절 한국에서 출범한 프로야구는 처음부터 프로축구보다 인기가 많았다. 이 처럼 자본의 논리로 치부하기엔 두 스포츠의 100년의 역사가 너무도 무겁게만 느껴진다. 가장 세계화된 스포츠로서 혹은 가장 상업화된 스포츠로서 축구와 야구에는 의도된 그리고 우연의 역사가 얽히고설켜있다. 이 복잡한 실타래를 조목조목 풀어낸 책이 바로 스테판 지만스키와 앤드루 짐벌리스트의 “왜?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원제: how Americans play baseball and the rest of the World plays soccer)”이다. 책을 통해 저자들은 서로 다른 전통을 가진 야구와 축구의 기원, 역사, 프로스포츠로의 발전과정, 조직과 운영의 방식, 복잡한 경제적 시스템 등을 방대한 사례와 함께 설명해 내고 있다.


1. 축구가 세계로 전파 될 때 왜 야구는 그렇지 못했나

야구와 축구는 세계화 정도만 놓고 보자면 비교 자체가 무리다. 야구는 92년에서야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었고, 국제야구연맹에 112개 회원국이 가입해 있다지만 지난해 개최된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은 예선까지 통틀어 고작 16개국이 참가했다. 결론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한국과 일본 그리고 카리브해 연안의 몇몇 국가들 정도에서 한정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야구가 세계화된 스포츠가 아니란 것은 명백하다.

반면, 축구는 지구상에 등장한 그 어떤 스포츠보다도 세계적이다. UN 회원국 수 보다 FIFA에 가입한 나라가 많고, 월드컵 결승전은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이 동시에 시청한다. 드라마 시청률은 30%만 넘어도 이슈가 되지만 월드컵 축구중계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지난 독일월드컵 토고 전 시청률은 73.7%에 달했고, 새벽 4시에 중계된 프랑스 전 조차도 50.2%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새벽 4시라... 기다리기에도, 일어나기에도 정말이지 너무 힘든 시간 아닌가? 그 뿐이 아니다. 축구가 보급된 국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국의 축구 수준이 높건 낮건 간에 가장 인기 있는 국민적 스포츠로 축구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축구는 어떻게 세계화된 스포츠로 자리 잡은 것일까?

이 책의 논조를 한마디로 요약하긴 어렵지만 개략적으로 볼 때 축구의 세계화에는 몇 가지 요인이 접합되었다. 종주국 영국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전 세계에 미친 제국주의적 팽창력과 상업적 영향력 하에 각국의 엘리트와 축구를 통한 우호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고, 현지화 과정에서는 민족주의와의 결합,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과도 연관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축구의 세계화 맥락은 시기적인 영향이 컸다고 설명한다. 한 마디로 때를 잘 만났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만약 미국의 세계에 대한 경제적 지배력이 40년만 빨랐다면 축구보다 야구가 세계적 스포츠가 됐을 지도 모른다’란 축구 애호가들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미국중심의 견해를 슬며시 펼쳐 놓는다.

반면 영국에 비해 제국주의적 확산이 상대적으로 늦었던 미국의 야구는 초창기부터 일찌감치 자본가들에 의해 급속한 상업화의 길을 밟는다. 철저한 기업 논리의 적용 속에 미국에서 야구단은 돈벌이의 수단이었고 야구장은 사업장이 되었다.

축구의 세계화에 대한 큰 틀을 설명함에 있어서 이 책의 논의들은 어느 정도 개연성을 갖기에 충분한 것 같다. 각국의 축구의 보급과 정착에 따른 다양성의 문제가 걸려있긴 하지만 이는 현지화 과정으로 설명해야 할 또 다른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2. 독점적 산업으로 발전한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이 책에서 야구와 축구의 모습은 각각 ‘폐쇄성’과 ‘개방성’이란 두 가지 기조로 설명된다. 먼저 메이저리그는 산업적으로 매우 성공한 독점자본주의 모델로서 제시되는데,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단환경과 리그환경을 갖추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초창기부터 지속적인 경쟁리그들의 도전을 받지만 우수선수스카웃을 통한 경쟁우위점유에 성공했고 리그합병을 통해 점차 유일무이의 상위리그의 지위를 구축해간다. 메이저리그에 속하지 못한 팀들은 매각되거나 마이너리그에 속해 메이저리그를 위한 선수공급소로 전락하고 만다. 특히 90년대 이후에는 메이저리그가 국제적으로도 뚜렷한 상위리그의 위치를 점유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즉 세계 각국의 우수 선수를 피라미드의 가장 정점에서 수급 받고 있는 것이다.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같은 인접국가 뿐 아니라 한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야구를 하는 모든 나라의 실질적인 상위리그로서 미국 중심의 지배체제를 구축하였다.

이 같은 메이저리그의 독점적 지위를 견고하게 만든 장치가 바로 ‘지역연고권(franchise)’과 ‘선수유보조항(reserve clause)’이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담합하여 지역연고권을 제한하였고, 그 결과 한 개의 팀이 특정지역을 폐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선수와의 계약에 있어서는, 선수노조의 끊임없는 저항으로 자유계약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아직까지 팀의 선수에 대한 독점적 교섭권을 인정하는 유보조항은 유효하다. 이 두 가지 모두 명백히 독점금지법에 위배되지만 야구는 리그 내 팀이 서로 공생해야 유지될 수 있다는 프로스포츠산업의 예외성을 인정받는다. 역시 법은 돈을 이기지 못하는 것인지...

메이저리그의 시스템은 결과적으로 선수나 구단 모두에게 엄청난 부를 선사하고 있다. 야구와 축구가 돈벌이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이다. 알렉스로드리게스는 연봉으로 무려 2560만 달러를 받고 있고, 이치로(34)가 5년간 9000만 달러(약 825억 원)에 재계약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물론 구단은 그 만큼의 지불 능력이 있다. 반면 2006년 축구시장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은 스티브 제라드는 알렉스로드리게스의 절반도 안 되는 1000만 달러, 웨인 루니는 10분의 1도 안 되는 240만 달러를 받고 있다. 축구와 야구는 시장의 규모가 다른 것이다.


3. 개방을 통한 처절한 무한 경쟁... 축구

축구의 개방성은 승강제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승강제란 성적이 부진한 팀은 하위 리그로 내려가고 반대로 우수한 팀은 상위 리그로 올라가는 무한경쟁 시스템이다. 야구는 선수들 간 업다운제를 적용하지만 팀의 변동은 없다. 현재 프로축구의 승강제 시스템은 전 세계 대부분의 축구리그에 적용되고 있다. 유럽과 남미리그 뿐 아니라 시리아, 레바논, 바레인, 말레이시아 등 모두 승강제를 하고 있다. 일본도 2004년부터 도입했다. 승강제를 채택하지 않은 프로축구리그는 전 세계적으로 미국, 한국, 호주뿐이라고 한다.

승강제가 가능한 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프로축구가 서로 경쟁하는 여러 클럽의 연맹에서 발전했고, 수준에 따라 자연히 디비전이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어떤 도시 또는 마을이라도 좋은 선수들만 모을 수 있다면 피라미드시스템에서 승급을 통해 메이저리그 팀을 유치할 수도 있다. 물론 반대의 결과가 초래되기도 하지만. 영국의 최초 리그에 참가했던 12개 팀 가운데 에버튼, 아스톤빌라, 볼튼, 블랙번 정도의 팀만이 현재 프리미어리그에 살아남았다는 점은 이 같은 축구의 개방성을 잘 설명해준다. 흔히들 유럽 축구의 광팬들은 그들의 축구(football)를 beautiful game이라고 일컫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는 아마도 승강제 시스템에서 고락으로 떨어지는 팀의 운명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생사를 같이하는 팬과 선수가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4. 축구와 야구가 서로에게 주는 교훈

축구와 야구는 각각의 장점이 있듯이 서로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야구의 경우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규제받지 않는 독점형태로서 그 지위를 이용해 공익의 이름으로 보조금을 지원받고 자신들의 시설에 투자한다. 구단은 떼돈을 벌 수 있겠지만 결국 납세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은 가중되기 마련이다. 점차 가중되는 계층적, 인종적 편향도 문제다. 많은 히스패닉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흑인선수와 야구장을 찾는 흑인 관중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저변확대의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축구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나 레알마드리드와 같은 몇몇 A급 팀을 제외하고는 심각한 재정난이 가장 큰 문제이다. 팀 간 경쟁이 매우 심하고 상위리그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구단들은 경기장을 건설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또한 유럽 각국에 프리미어리그, 프리메라리가, 분데스리가, 세리 A 등의 비슷한 수준의 리그가 산재하면서 국내적으로 뿐 아니라 외국의 팀과도 서로 무한경쟁 체제를 펼칠 수밖에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 결론적으로 축구와 같은 무제한적 경쟁체제는 팀의 재정적 압박과 리그의 안정성에 문제를 야기한다.

이 책은 몇 가지 단순한 결론을 제시하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장에서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즉, "축구는 재정적 위기에 직면해 있고, 야구는 장기적으로 팬들의 저변을 유지하고 확대해 나가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야구와 축구가 서로의 장점을 과감히 채택할 것을 조언한다.


5. 한국 프로스포츠의 갈 길은?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오버랩된 것은 우리 프로스포츠의 현주소였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의 팀 스포츠의 프로리그가 있으며 야구와 축구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는 지구상의 몇 안 되는 특이 케이스가 바로 한국이다. MLB 커미셔너 버드셀릭은 얼마 전 ‘CEO Exchange’란 프로그램에서 출연해 MLB의 세계화가 성취된 대표적인 나라로 한국과 일본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축구는 또 어떤가? 비록 K리그는 휘청댈 지언즉 명색이 월드컵 개최국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프로스포츠 시스템의 현주소는 어떤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종목을 막론하고 수익성 저조라는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지 않은가? 재정만이 유일한 문제인가? 선수노조도 아닌 선수협의회 설립에 엄청난 진통을 앓았던 프로야구는 물론이고, 야심차게 도입했지만 줘도 안 받는 신세로 전락한 K리그의 승강제 시스템, 경쟁력 평준화의 실패로 10년의 암흑기를 보내고 최근에야 가까스로 일어선 배구, 지나친 전력 평준화를 위해 ‘포지션별 랭킹제한’과 같은 전대미문의 제도를 도입한 농구 등 프로스포츠를 둘러싼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어떤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미국의 야구와 영국의 축구를 방대한 사건의 흐름과 수많은 인물의 통해 조명해 내면서 결국 이야기(story)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분명 상업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결코 돈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돈의 흐름을 만들어낸 기승전결이 있고,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 프로스포츠가 앞으로 언제까지 겪을지 모를 시행착오의 과정을 앞당겨 줄 수 있지 않을까?

두 경제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축구와 야구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프로스포츠는 돈만 많이 벌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팀과 함께 운명을 함께하는 팬들이 절대로 간과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처럼 적자에 허덕이는 프로리그를 떠안고 있는 나라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프로스포츠의 구조적 문제를 뿌리부터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나아가 팀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는 팬 모두가 존중 받는 시스템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깊은 의미를 선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구 한국스포츠개발원) - 발행년도 : 2007 - 간행물 : 스포츠과학, 100권 0호 - 페이지 : pp.98-104 ( 총 7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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