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정 아카데미와 폭력
최종 수정일: 2024년 7월 6일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그의 큰 아들 그리고 다른 지도자 한 명이 손 아카데미 학부모로부터 아동 학대 혐의로 피소되었다. 손 아카데미 측이 훈육의 이름으로 지속적인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사실을 인정했고, 이에 대해 사과도 했다. 그러나 합의 과정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지나친 합의금을 요구한 학부모들이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는 상황이다.
내가 이 사건에서 주목하는 건 여론이다. 대중은 ‘손웅정 측의 폭력’과 ‘학부모의 지나친 합의금 요구’라는 두 가지 별개의 사건을 분리하지 않는 듯하다. 즉, 온라인을 도배하고 있는 “그 정도도 못 참고, 어떻게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나”, “손 아카데미에 맡겼다는 것은 그 지도 방식을 따르겠다고 합의한 것 아닌가”, “세상 많이 변했다. 옛날 같으면 아무 일도 아닌 걸 가지고, 별 난리를 치고 자빠졌네” 등의 의견이 지배적으로 손 아카데미를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폭력과 합의금 요구는 개별 사건으로, 만일 폭력이 사실이었다면 그 문제는 그 문제대로, 학부모의 공갈 협박이 있었다면 이 또한 별도로 다루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두 사건이 하나로 뭉쳐져 어떤 놈이 더 나쁜가란 식의 대중 심판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그러니까 일종의 복합 질문의 오류가 대중 여론의 저변을 지배한다는 얘기다.
한편 이 사건에서 "폭력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는 왜 이 모양인가”란 비판도 있다. 그러나 대중이 체육계의 폭력에 항상 이렇게 관대했던 건 아니다. 과거 대한빙상경기연맹이 폭력 문제로 대한체육회의 관리단체 지정이 취소된 사례의 경우, 여론은 엄청난 분노와 비난을 쏟아부었고, 이런 폭력이 체육계 전반에 만연해 있을 것이라는 우려로, 국가가 직접 나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만 해도 폭력에 대한 대중 일반의 감수성엔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일방적으로 자식을 이용해 돈벌이하려는 파렴치한 학부모에 대한 융단 폭격과, “교정을 위한 체벌과 고무를 위한 채찍질이 체육계의 필수”라는 대중 여론이 손웅정을 옹호하고 있지 않은가.
손웅정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축구선수 손흥민을 낳아주고, 길러주고, 바른 길로 인도하여 그야말로 실력도 인성도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려놓은 대단한 부모이다. 그런 손웅정의 가르침은 축복이자 재능 기부인데, 이 망할 놈의 학부모들이 어디다 협박질인가. 그러니 모두 이렇게 한 마디씩 참전해 못된 학부모에 맞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을 “여러분의 폭력에 대한 감수성은 언제부터 이 꼴이 되었나”라고 한탄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욕설을 퍼붓고, 고용된 코치들은 아이들을 두들겨 패기까지 하는, 게다가 지속적인 물리적 언어적 폭력이 있었다고 스스로 시인하기까지 한 손웅정이 어떻게 이처럼 대중 여론의 절대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이유는 두 말할 필요 없이 손흥민을 길러낸 훌륭한 부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지점에서 "훌륭한 부모가 엄청나게 훌륭한 자식을 만든 게 아니라, 엄청나게 훌륭한 자식이 부족한 부모를 참 멋지게 창조해 냈다"고 생각한다. 손흥민이 월드 스타의 반열에 오르자, 비교적 조심스럽던 손웅정의 행보는 과감해졌다. 책을 출판하고, 방송에 출연해 세계적인 선수를 기른 부모는 이렇게 다르다는, 손흥민의 성공이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서사를 전파시켰다. 그는 운동선수를 둔 부모의 모범이 되었고, “여러분도 월드 클래스를 키우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그의 지도 방식이 비판 없이 대중에 수용됐다. 손흥민이란 특별한 자식의 후광효과가 부모에게 미쳤고, 손웅정은 잘 나가는 아들을 이용해 자기 브랜딩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자기 브랜딩이라고 칭하는 손웅정의 행보는 그가 계획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카데미야 축구선수였던 본인의 꿈이었으니까 그렇다 치고, 책을 내고, TV에 출연하고, 세상 부모의 멘토가 된 건 성공한 자식의 배경에 관심이 많은 한국사회의 고질병이고, 이 같은 기대를 수익으로 창출하려는 출판사와 미디어의 상술에 부추긴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손흥민을 키워낸 훌륭한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변할 수 없는 사실은 폭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폭력은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지도법의 범주에 없다. 겁에 질린 아이들이 바짝 긴장하고, 폭력의 위협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미친 듯이 달린다. “사랑만 있다면 교정을 위한 체벌과 동기부여를 위한 채찍질은 체육계의 필수 덕목”이란 생각은 손흥민의 후광효과에 영향을 받은 대중이 손웅정에게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특별한 예외일 뿐이다. 이는 윤리적으로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한계 또한 뚜렷하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폭력에 반항하기 마련이고, 지도자의 폭력보다는 자신의 노력을 보상받기 위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어려움을 감내한다. 폭력은 아직 힘없는 미성년에게는 잠시 먹히는 미개한 지도법일 뿐이다. 그러나 이 지도법을 우리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한, 특히 아동에게 금지할 것을 굳게 합의한 이상, 그 누구도, 그것이 월드클래스 손흥민을 키워낸 그 아버지일지라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손웅정의 교육 방식은 그의 업적과 별개로, 우리가 지향하는 건강한 스포츠 육성 환경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훌륭한 자식을 길러낸 사람에게 맡긴 이상 그 정도 폭력이야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정당화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손흥민의 성공이, 그 아버지의 만들어진 신화가 체육계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체육계 전반에 만연할 수 있는 폭력 문제를 간과하게 만들며, 궁극적으로 건강한 스포츠 문화를 조성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 더군다나 이 압도적 여론이란 게 아래의 신문 기사와 같이 "폭력은 사실 있지도 않았다"는 새로운 진실을 창조하지 않는가.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한국 사회만큼 성공한 자녀의 부모가 주목 받는 사회가 있을까. 손흥민의 성취는 그의 개인적인 노력과 재능의 결과로 인정받아야 한다. 만일 손흥민도 그의 형 손흥윤도 성공을 위한 여정에서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면 손흥민의 사례는 지금처럼 칭송받을 모범 케이스가 결코 될 수 없다. 성공한 자식의 후광 효과로 인해 부모의 폭력적인 지도 방식이 용인된다면, 이는 한국 스포츠 환경의 커다란 퇴보일 뿐이다. 손웅정이든 누구든, 그의 업적과는 별개로 폭력적인 행동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아래는 15년 전 내가 손흥민을 처음 봤을 때 손웅정에 관해 블로그에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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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일 남산도사 블로그
분데스리가의 신성 손흥민이 한국 축구의 희망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18세의 어린 선수가 일단 체격도 좋고 스피드도 있다. 무엇보다 개인기가 뛰어나 상대 템포를 뺏는 능력이 있어 쉽게 쉽게 볼을 찬다. 볼을 소유하는 능력도, 패스 게임 능력도, 대포알 같은 슛팅 능력도 뭐 하나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2-3년만 더 자라준다면 그야말로 대박일 것이다. 손흥민이 개인기가 뛰어난 이유는 축구선수였던 그의 아버지 때문이란다.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선수 출신이지만 체력 훈련만 받아서 개인기가 창피할 정도라고 했고, 그 때문에 그 아들에겐 개인기를 집중적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사실 난 손흥민을 키워 낸 그의 아버지가 웅정이 형이란 사실을 어제 알았다. 손웅정. 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이 형은 우리 아버지가 감독인 팀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국민학교 시절 웅정이 형은 육상선수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시 소양중 축구부를 창단하려고 했었는데, 태백의 한 육상부 선생님이 서산에 가면 무지하게 빠른 친구가 있으니 데려다 축구를 시켜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고, 선수가 없어 고민하던 아버지는 그 길로 서산에 찾아가 양복점을 하던 그의 형님을 만나서 춘천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그러니 체력 훈련만 시켜 창피한 개인기를 심어준 장본인이 우리 아버지인 것이다. 웅정이 형에게 반면교사가 되어 개인기의 중요성을 깨우쳤으니 우리 아버지도 뒤늦게 한국 축구에 이바지한 셈이다. 하지만 웅정이 형은 본인이 말하는 것처럼 창피한 수준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아니, 당시 아버지 팀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였다. 내 기억에 체격은 작지만, 기술이 아주 좋아 포워드를 섰고 골도 많이 넣었다. 당시 청소년 대표에도 합류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어느 누가 개인기 중심에 축구를 지도했겠는가? 다 마찬가지 아니었겠나... 아버지를 위한 나의 변이다. 어쨌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왔을 형의 이름을 들으니 좀 반갑다. 그리고 그의 아들 손흥민이 전 세계 축구판을 뒤집어 놓을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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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서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세월도 많이 흘렀고, 감회가 새롭다. 손흥민이 정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으니까. 손웅정이 쓴 책에도 내 아버지에 관한 내용이 꽤 등장하는데, 뭐 좋은 것이 하나 없어 나의 손웅정에 대한 감정은 별로 좋을 게 없다. 그러나 손웅정의 폭력적인 훈육방식이 혹시 내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까란 생각, 그래서 내가 이런 원론적인 얘기를 쓰는 게 맞나 등,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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