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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의 공정 이슈: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최종 수정일: 2022년 1월 17일


한국 사회의 스포츠 공정성 전쟁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만큼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하며,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열심히 노력한 만큼 성취하길 기대한다. 그러나 어디 현실이 그런가. 성공사회의 구성원이 되려면 좋은 부모를 만나야 하고, 사교육으로 대변되는 넉넉한 지원 속에,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혈연 – 지연 - 학연의 끈끈한 사회적 자본의 토대 위에, 소위 우리가 남이 아닌 집단의 구성원이 되어야 제대로 된 꿈을 펼칠 수 있다. 흙수저는 흙수저일 뿐이고, 세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아무리 용을 써봐야 내 노력과 능력으론 성공 사회의 높은 벽을 결코 넘을 수 없으리란 ‘회의’, ‘자조’, ‘불신’. 능력주의(meritocracy)란 계층 상승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조작적 이데올로기일 뿐, 우리가 마주한 현실 세계는 결코 공정하게 와 닿지 않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스포츠의 의미는 아주 특별하다. 좋은 부모를 만나지 않아도, 혈연, 지연, 학연 따위의 도움 없이도, 주어진 규칙 속에서 정치, 경제, 인종, 계급 등 그 어떤 사회적 조건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맨몸뚱이 하나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김연아나 손흥민처럼 국민 영웅도 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분야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이 혼탁해도 스포츠만큼은 자신의 능력만큼 성취할 수 있다고 여전히 믿어지는 스포츠, 우리는 그 때문에 고된 훈련을 감내하며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성취를 바라보며 우리 사회가 아직 공정하다는 희망을 품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스포츠계의 공정성이 문제라고들 이야기한다. 규칙에 따라 경기를 치르면 그만인데 스포츠가 규칙대로 운영이 안 된다는 얘기일까. 아니다. 경기단체를 장악한 회장과 측근들이 협회의 재원을 횡령, 배임하고, 공적 조직을 자기 것처럼 사유화한다. 협회는 편파적으로 심판을 배정하고, 특정 파벌에 속하지 않으면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대표선수는 꿈도 못 꾼다. 학생선수를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협회의 임원, 심판, 심지어 상대 팀 지도자까지 한통속이 되어 고의 패배를 일삼고, 협회는 대학 입시에 제출할 경기실적 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도자가 선수를 폭행하는 사건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성추행 및 성폭행 문제가 체육계 미투 운동으로 번지면서 스포츠계는 썩을 대로 썩었고, 심지어 인권의 사각지대란 대중의 인식이 팽배하다.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만큼은 공정할 것이란 대중의 믿음은 무너진지 오래다.

이처럼 한국 사회의 스포츠 공정성 담론은 경기 규칙의 공정한 적용(fairness) 에 관한 게 아니다. (성)폭력, 승부조작, 입시비리, 조직 사유화 등 스포츠계가 청산해야 할 산적한 문제들이 ‘공정성(integrity)’이란 이름 아래 폭넓게 논의되고 있다. 그 때문에 스포츠 공정성의 영역은 ‘스포츠 개혁’ 또는 ‘스포츠 혁신’이란 이름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스포츠 윤리’나 ‘스포츠 인권’이란 용어로 확장하기도 한다. 본 고에서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스포츠 공정성 담론이 다뤄온 문제를 몇 가지 주제를 통해 다룬다.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이 이루어져 왔는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한다. 특히 스포츠 공정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을 ‘특수성’과 ‘폐쇄성’이란 두 가지 구조적 차원으로 설명할 것이다.

스포츠 공정성 회복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

스포츠 분야의 공정성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위원회와 신고센터의 설립을 들 수 있다. 2009년 대한체육회가 설립했던 ‘스포츠人권익센터’, 2012년 승부조작 근절을 위한 ‘클린스포츠 센터’,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성)폭력’, ‘입시비리’, ‘조직사유화’, ‘승부조작’ 네 가지를 스포츠 공정성을 해치는 4대 악으로 규정하면서 설치했던 ‘스포츠비리신고센터’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대한체육회를 비롯하여 각 시·도 및 시·군·구 체육회는 스포츠공정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또한 조재범 코치 성폭행 사건 이후 7차에 걸쳐 권고안을 내놓았던 ‘스포츠혁신위원회’, 故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을 계기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스포츠윤리센터’도 독립법인으로 만들어졌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협회에 알리고 사법적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면 그만인데 왜 스포츠계엔 별도의 신고센터와 공정위원회가 필요했을까. 약자인 선수가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섣불리 법에 호소했다간 좁은 바닥에서 낙인찍혀 더 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란 노파심에 침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고센터에는 약자인 선수의 편에 서서 법률 상담을 하고, 수사를 지원하며, 피해 구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싸워줄 창구의 기능이 부여되었다. 또한 분쟁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사법적 판단에 따라야 하지만 모든 문제를 법적 절차를 통해 결정하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해 스포츠중재재판소(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CAS)와 같이 대안적 분쟁 해결(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ADR) 기구의 역할이 필요하였다.

그렇다면 한국 스포츠의 공정성 회복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은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2018년 문체부가 발표한 스포츠비리신고센터 접수 현황에 따르면, 4년 동안 접수된 비리 건수는 총 755개다. 이 가운데 수사기관으로 송치되거나 징계가 내려진 사건은 122건에 불과했다. 또한, 2020년 2월 감사원이 발표한 ‘국가대표 및 선수촌 등 운영·관리 실태’에 따르면 대한체육회가 2016~2019년 성폭력 등으로 징계 처분한 104건 중 33건은 징계 기준 하한보다 낮게 처분됐고, 2016~2019년까지 대한 스포츠공정위원회가 조사한 초·중·고 운동부 지도자 비위 173건 가운데 152건(87.8%)은 각 체육 단체에 통보조차 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미디어를 통해 폭력을 비롯한 스포츠계의 비위 문제가 지속해서 보고되고 있다. 수많은 신고센터와 각종 위원회의 권고가 공정성 신장을 위한 변화의 실마리를 놓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로 봤을 때 그것이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묻는다면 회의적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스포츠 공정성 패러다임의 한계

많은 전문가는 한국 스포츠의 공정성 붕괴의 주된 원인을 ‘국가주의 스포츠 시스템’ 그리고 ‘승리지상주의’란 두 가지 구조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구조를 공고하게 하는 주요 제도로서 ‘체육특기자제도’, ‘학교운동부 시스템’, ‘소년체전 및 전국체전’등을 지적한다. 이를 좀 거칠게 문장으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스포츠는 국위선양을 위해 스포츠를 도구 삼았던 군사정부 시절 만들어진 체육특기자제도에 따라 학생선수의 학습권을 박탈해 왔다. 이런 제도 속에 성장한 학생선수는 공부는 등한시하고 운동에만 집중함으로써 다른 직업 선택이 어렵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이 부족할 뿐 아니라, 청소년기에 요청되는 비판적 합리적 사고의 함양과 균형적 사회 인식의 형성이 어렵다.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 학생선수와 엘리트 스포츠인들, 폭력과 성폭력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더라도 신고를 못 하는 이유는 이에 맞서 싸울 주체적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폭력에 노출되어 성장한 학생선수는 지도자가 되어 이를 대물림한다. 또한 소년체전과 전국체전 그리고 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우수 선수의 집중 육성시스템은 지나친 경쟁 구도를 만들어 승리지상주의가 만연한 구조적 체계를 만들었다. 오직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잘못된 관행들이 스포츠의 공정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문을 비롯하여 한국 스포츠의 공정성 회복을 주창하는 글들의 주요 논지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 같은 접근법은 ‘승리지상주의’나 ‘국가주의’를 스포츠의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동원하고, ‘체육특기자제도’, ‘소년체전 및 전국체전’ 같은 제도를 그 폐단의 구조로 파악한다. 그런데 문제의식의 시작은 구조적일지 모르겠지만 문제의 해결 방법은 결국 구조가 탄생시킨 ‘개인’으로 귀결한다. 즉, 구조로서 ‘국가주의와 승리지상주의란 시스템’을 부각하지만 결국 문제가 문제인 이유는 공부할 기회를 박탈당한 엘리트스포츠 각 ‘개인’이고 이들이 파벌, 조직 사유화, 승부조작, 입시비리 등 각종 비위와 (성)폭력과 같은 인권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신고센터와 위원회의 설치 등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약자인 선수를 위해서도, 각종 비위의 근절을 위한 계도적 차원에서도 필요한 기구들이다. 다만 문제의 원인이 구조라고 지적하면서 그 구조에서 지속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는 구조를 잘못 해석했거나, 해결을 위한 조처들이 미흡했거나 둘 중 하나의 문제일 것이다.

학교 스포츠 공정성 문제의 뿌리와 이해의 연결고리

학교운동부 시스템은 스포츠 공정성 붕괴의 가장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유신헌법이 제정된 72년에 만들어졌다고 왜곡되어 주장되고 있는 체육특기자제도 때문에 운동만 해도 대학까지 진학할 기회가 보장되었고, 학업 결손이 일어나고 있으며, 공부는 안 하고 운동만 한 엘리트 체육인들 때문에 입시비리, 승부조작, 폭력 등 온갖 한국 스포츠의 고질적 병폐가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스포츠 공정성 회복을 위한 대안들이 엘리트스포츠 육성의 문제와 학교 운동부 시스템의 문제를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그동안의 조처들은 대부분 학원스포츠의 정상화를 곧 한국 엘리트스포츠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등치 시켜 왔다. 2000년 장희진 사태를 기점으로 ‘공부하는 학생선수’ 담론과 이와 관련된 대책들(학교체육진흥법의 제정, 학습권 보장, 최저학력제, 주말리그제 등) 그리고 지난 스포츠혁신위원회가 내놓은 2차 권고문은 학교 스포츠 정상화 방안이자 동시에 한국 엘리트스포츠의 고질적 병폐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그런데 학원스포츠의 정상화를 통해 엘리트스포츠의 문제 또한 풀어낼 수 있을까?

나는 이 지점에서 한국의 엘리트스포츠 육성시스템이 형성되어 온 특수성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 아니 그 이전 일제강점기부터 일선 학교들은 전문 운동선수를 스카우트해 학교 운동부로 출전시키고 학교의 명예를 높이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962년, 기존 대학 자율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국가 차원의 대입 국가고시가 일제히 도입되자 그동안 무시험 또는 형식적 시험 과정을 통해 선발하던 체육특기자들도 모두 국가고시를 치러야 했고, 이에 대해 대학과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체육계가 나서 국위선양 등의 이유를 내세워 일제히 반발했다. 그 결과 63년 국가적 차원에서 체육특기자에 대한 무시험 입학전형이 도입되었다. 이후 60년대 학교별 자유입학 체제에서는 초·중·고·대학교까지 운동부를 통해 이름을 높이고자 했던 학교들이 전국을 샅샅이 뒤져 선수를 스카우트하고 입학시험 없이 학생 자격을 부여하였다. 69년 예비고사는 어떤가. 모든 학생이 예비고사를 치러야 하고 체육특기자에 대한 예비고사의 면제 혜택은 체육계열 학과에만 주어지자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동국대, 건국대 등 전국의 10여 개 대학이 체육특기자를 뽑기 위해 체육계열 학과를 신설하지 않았는가. 이 과정에서‘국위선양’이란 이데올로기는 군사정권이 정권 홍보를 위해 스포츠를 도구삼는 구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엘리트 스포츠계와 교육 당국이 학교를 전문체육 육성 기구로 삼기 위한 주요 논리였다는 사실이 멀지도 않은 역사에 고스란히 담겨있지 않은가. 요컨대 유신 정권에 의한 72년 체육특기자 제도의 탄생이란 명백한 역사 왜곡은 오늘날 한국 스포츠의 문제를 ‘국가’라는 단일 요인으로 축소할 뿐 아니라 입학시험 없이 스카우트해 학교를 통해 엘리트선수를 육성하고자 했던 대한체육회로 대표되는 엘리트스포츠 진영과 운동부를 통해 학교의 위세를 과시하고자 했던 교육계 등 다양한 행위자의 ‘이해관계’의 존재를 은폐한다.

학교 중심이 된 엘리트스포츠 육성시스템이 국가가 주도한 국가주의 스포츠의 산물이 아니라 국가뿐 아니라 체육계, 교육계, 학부모, 학생선수 등 다양한 주체의 ‘이해관계’ 속에서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란 사실은 오늘날의 학원스포츠가 왜 폐쇄적인 구조적 특성을 나타내는지 설명해 준다. 겉으로는 수시입학이란 입학전형을 따르지만, 하급 학교의 감독과 상급 학교 감독의 이해가 결부되어 있고, 자식을 대학 보내야 하는 학부모와 감독 간에 이해가 발생하고, 하급 학교로부터 안정적으로 선수를 공급받아야 하는 상급 학교, 즉 학교와 학교 간 이해가 존재한다. 이 이해의 연결고리가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긴장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입학성적을 만들기 위해 파벌을 형성하고, 밀어주기 승부조작을 저지르고, 입시비리로 이어지는 등 얼마든지 법의 테두리를 넘어 비위로 이어지는 취약한 구조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입시와 필연적으로 결부되는 학교가 엘리트스포츠 육성을 위해 적절한 곳이 아니란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학교 스포츠의 공정성 회복과 관련해 고민해야 할 지점이 다양한 주체들 간 형성되어 있는 이해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 그리고 학교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엘리트스포츠를 어떻게 육성할지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왜 꼭 학교여야 하는가.” 엘리트스포츠를 육성할 사회적 자원이 부족하던 시절엔 학교가 엘리트스포츠 육성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학교의 시설과 체육교사의 노고와 교육부 재원 없이는 엘리트선수 육성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학교의 지원 없이는 육성이 불가능한 종목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인기 종목들은 이미 육성을 위한 상업적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지역 및 지자체, 시민사회 그리고 공단과 같은 공적 기구부터 각종 비영리 기구까지 학교 말고도 얼마든지 엘리트스포츠 육성을 위한 대안적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은가.

그동안의 공정성에 관한 제언들은 엘리트스포츠 육성 패러다임의 전환과 같은 근본적인 토대의 변화를 얘기하면서도 ‘학교 중심 엘리트스포츠 육성’이란 기존의 체계를 결코 넘어서지 못했다. 엘리트스포츠 육성을 위한 학교 밖에 대한 상상. 즉, 입시라는 이해의 연결고리를 끊어낸 다른 배경에서, 폭력이 아닌 선진화된 훈련 방식으로 서비스 경쟁을 하는 엘리트스포츠 육성시스템에 대한 상상력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직장운동경기부의 폐쇄성과 폭력

故 최숙현 선수 사건과 관련하여 언론 대부분과 전문가들은 지나친 승리지상주의가 불러일으킨 참사라 논평하였다. 승리에 대한 지나친 몰두가 폭력이란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소속 직장경기운동경기부 선수 4,069명을 대상으로 인권 실태를 조사한 결과 소속팀 내 신체적 폭력 경험자가 15.3%, ‘거의 매일 신체 폭력을 당한다’고 응답한 선수가 8.2%로 나타났다. 욕이나 협박 등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선수는 33.9%로 나타났다. 직장운동경기부라고 하면 직장인이란 얘기인데, 세상에 어떤 직장인이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같은 일이 반복된단 말인가.

직장운동경기부의 폭력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그 특수성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체육회 소속도 있고, 지자체 산하 공단 소속도 있고, 시청, 군청 등 형태가 다양하므로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그 규모가 상당할 뿐 아니라 대규모의 지방비가 선수의 인건비로 소요될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직장운동경기부는 아무리 다른 이유를 동원하더라도 그 주요 목적은 전국체전에 출전해 지자체의 성적을 올리는 일이다. 프로스포츠는 입장권료, 방송권료, 광고료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지만, 전국체전 이외의 다른 효용은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선수로 활동이 가능한 ‘시장 없는 프로선수들’, 과거 냉전시대 동구권 국가들이 올림픽에 출전할 운동선수가 운동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생계를 책임져 줬던 국가 아마추어리즘(state amateurism)을 한국은 국가대표도 아닌 그 예비 단계의 선수 수준에서부터 각 지방자치단체가 나눠 맡아서 하고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직장운동경기부가 그 낮은 효용 때문에 직업 안정성이 굉장히 취약하고 언제든지 해체될 불안에 시달린다는 데 있다. 故 최숙현 선수의 폭력 문제를 보고받은 경주 시청의 첫 반응은 무엇이었는가. “해체해 버리면 그만”아니었나. 이런 조직의 경우 문제가 있어도 외부로 잘 알리지 못한다. 혹시나 문제를 보고했다가 팀이 해체될까, 그래서 직장을 잃어버릴까 두려울 뿐이다. 폭력의 피해자가 폭력에 저항해 싸움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그 투쟁에 드는 비용보다 훨씬 큰, 그래서 문제가 있어도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그냥 버티는 게 차라리 속 편한 게 이 집단이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개인 간의 폭력은 권력의 왜곡된 형태의 표출방식이다. 그리고 폐쇄적 구조는 언제나 폭력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문명국가라면 개인 간 사적 차원의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다. 즉, 개인 간의 분쟁을 주먹다짐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 법, 감옥 등을 이용해 국가가 나서서 해결한다. 그런데 만일 폭력이 어느 특정 분야에서 만연해 있다면 그 집단 구성원이 폭력적이고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친밀한 가족 내에 이루어지는 가정 폭력, 사랑하는 연인 간의 데이트 폭력, 외부의 접근이 어려운 군대 내 폭력, 심지어 대한민국 상위 1%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의대 교수들의 제자들에 대한 폭력까지, 폭력은 우리 사회 곳곳에 편재해 있다. 사회의 보편적 정서가 폭력을 용인하지 않음에도 지속적 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는 그 집단의 구조가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신고센터와 윤리교육 및 인권에 대한 강조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부당한 대우를 외부로 알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 직장운동경기부의 폐쇄적 구조 때문이지 부당함에 맞서 싸울 주체적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직장운동경기부의 폭력 문제는 그 ‘체질 개선’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직장운동경기부의 용도를 전국체전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지역 생활체육을 위한 서비스조직으로 그 기능을 다변화하는 것이다. 그 많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직장운동경기부를 왜 전국체전을 위해서만 활용하는가. 특정 종목의 뛰어난 전문가들이 지역에서 해당 종목의 저변을 넓히고, 종목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코치로서, 지도자로서, 같이 운동하는 동료로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전국체전이란 유사시가 되면 또 승리를 제일의 목표로 두고 시도를 대표해 전국체전에 출전해 직업운동선수로서 활동하면 될 일 아닌가. 나를 지도하는 코치가, 같이 운동하는 동료가 전국체전에 출전한다면 지역 시민의 전국체전에 관한 관심도 올라가고 직장운동경기부의 폐쇄성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직장운동경기부의 쓰임이 개선되고 확대되어야 조직의 효용성이 높아지고, 지자체 내에서 그 운영의 당위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이 폐쇄적 집단의 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나의 예를 든 것일 뿐이지만, 폐쇄적 구조에서 발생한 문제는 그 구조를 개방적 구조로 변화하는 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한국 스포츠의 구조 개편: 특수성과 폐쇄성에서 보편성과 개방성으로

한국 사회의 스포츠 공정성 담론에서 말하는 ‘공정’이란 ‘fairness’가 아닌 ‘integrity’이다. 이는 한국 스포츠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정’이란 용어가 동원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때문에 새로운 공정 이슈를 지적하고 해결하기보다 지금까지의 한국 스포츠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 방식을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것이 스포츠 공정 이슈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 생각했다. 국가주의 또는 승리지상주의로 뭉뚱그려졌던 구조에 대한 보다 세밀한 분석, 체육특기자제도 또는 직장운동경기부와 같이 한국 스포츠를 구성하는 각 요목에 대한 각론을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공정성 회복을 위해 필요한 노력들이다.

특별히 본 고에서는 한국 스포츠의 공정성 붕괴가 엘리트스포츠의 육성 및 운영 시스템의 특수성과 폐쇄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였다. 그 이유는 국가주의, 국위선양, 승리지상주의 등이 문제라는 막연한 스포츠·체육에 국한된 특수주의적 시각으로는 도돌이표처럼 제자리로 돌아갈 뿐, 한국 스포츠가 짊어진 문제에 균열을 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포츠에서 일어나는 각종 비위와 (성)폭력의 문제가 배우지 못하고 윤리 의식 떨어지는 사람들이 사는 스포츠란 ‘섬’에서 만들어진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보편적 문제라는 문제의식 그리고 이 문제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이해의 관계로 얽히고 설킨 폐쇄적 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통찰력 아물러 이 폐쇄적 구조를 개방적 구조로 개편하고자 하는 다각도의 노력이다. 신고센터와 위원회의 설치는 약자인 선수를 대변하기 위해서도, 각종 비위에 대한 계도적 차원에서도 필요한 조처들이었다. 그러나 공정성 붕괴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윤리의식의 부재 또는 공부를 못해서 등 그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스포츠계의 구조를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 구조의 균열을 내기 위해 학교의 담장을 넘어 엘리트스포츠 육성을 논의하고, 직장운동경기부의 전국체전을 위한 효용을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더 근본적인 구조 개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한국의 스포츠가 공정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츠과학 2020 겨울호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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