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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승백

올림픽! 국가가 먼저냐 개인이 먼저냐

최종 수정일: 2022년 1월 9일





영화 불의 전차에서 수록된 곡입니다. Five Circles는 다섯 개의 링, 곧 오륜기를 의미합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을 배경으로 영국의 육상 선수들이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평에는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스포츠 정신이 살아있는 감동의 명작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명작이죠. 나 이거 30주년 OST도 샀잖아. 근데 이 작품의 에릭이 주일성수를 위해 일요일 경기출전을 포기하고, 귀족 출신 린지가 400m 출전 티켓을 에릭에게 양보한다는 휴머니즘이 명작을 만들어 주진 않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1924년 당시 올림픽이 이미 국가 간의 치열한 헤게모니의 각축장이었고,이 전문적이고 과학적으로 훈련하는 전문 선수들이 등장했다는 것, 즉 국가주의와 프로페셔널리즘이 올림픽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릭 리델이 주일성수를 위해 경기를 포기한 것이 순수하게 보이는 이유는 전문 육상코치 무사비니를 영입해 프로페셔널한 훈련을 하는 아브라함이 있기 때문이고, 영국 올림픽 위원회 원로들과 왕세자가 일요일에 뛰지 않겠다는 선수에게 국가를 위해 달려야 한다고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마추어의 순수함을 그려내기 위해 그 대척점에 프로페셔널리즘과 국가주의를 장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감동 포인트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려는 에릭도, 최고가 되기위해 전문 코치를 고용한 아브라함도 모두 그들의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는 개인들입니다. 올림픽에서의 성취가 국가 간의 경쟁으로 화려하게 포장되지만, 사실 주인공은 선수 개인입니다. 그들 모두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소박한 투쟁을 벌이고, 경기가 끝나면 화려한 성취에 휩싸이기 보다 쓸쓸히 홀로 남겨지게 됩니다. 저는 이곡 Five Circles를 들을때면 선수들이 자신의 삶을 걸고 최선을 다한 후 텅 빈 운동장에 앉았을 때의 쓸쓸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원래 올림픽이란 것이 처음부터 국가 간의 경쟁은 아니었습니다. IOC라는 게 쿠베르탱이 28살 때 유럽에 귀족들을 모아 만든 사조직이거든.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 대회서 시작되었을 때 참가 단위는 개인이나 팀이었습니다. 사람마다 국적이야 있지만 거기 참가하는데 어느 나라 사람인 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장사가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당시 인기 있던 만국박람회 같은 행사의 부대 행사로 연명하다 반전이 일어납니다. 바로 1908년 제4회 런던 올림픽 때부터 각국 올림픽 위원회(National Olympic Committee)가 참가를 신청을 하도록 하고, 개회식 때 국명에 따라 알파벳 순서로 입장하도록 한 것입니다. 각국의 NOC가 국가명을 앞세운 깃발 들고 붙다 보니 당시 패권 국가이던 영국과 미국이 피를 튀기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은 올림픽에서 게르만의 위대함을 실현하고 2차 대전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냉전시대에는 공산진영 자유진영으로 나눠진 세계가 올림픽을 이데올로기 각축장으로 활용하면서 그 흥행은 자동 빵이 됩니다. 개인과 팀이 벌이던 민간 스포츠 행사를 국가 간의 대리전쟁으로 바꾼 게 근대 올림픽 흥행의 킬링 포인트였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들이 이번 겨울올림픽에서도 겹쳐 일어나고 있죠. 북한의 정은이가 신년사에서 남한에 올림픽 메시지를 던진 것입니다. 이제 망해가던 올림픽에 바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이 성공한다면 그 1등 공신은 롱패딩과 김정은이 될 것입니다. 롱패딩은 젊은이들이 올림픽에 관심을, 정은이는 꺼져가던 평창에 국가주의 불을 지펴 주었으니까요. 정은이가 갑자기 평창에 관심을 표명하자 정부는 아싸라비야 냄비뚜껑입니다.이 장단에 맞춰 올림픽 공동 입장하고,단일팀 출전하고 ‘우리가 한 민족이었구나’ 하면서 눈물도 흘리고, 관계도 좋아지고, 핵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국제사회에서 고립상태에 빠진 북한 입장에서 올림픽은 가장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전략입니다.스포츠는 언제나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어 왔으니까요. 이런 걸 유식한 말로 스포츠정치종속론이라고 합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스포츠에 대한 입장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올림픽이 정치적이 되면 국가가 부각되고 그 가운데 개인은 소외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정치적이지 않으려면 정은이가 아니라 NOC의 위원장 김일국이가 올림픽에 관심있다고 얘기 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부가 아니라 대한체육회장 이기흥이가 그에 대해 응대를 하는 게 맞죠. 그리고 기흥이는 이 문제와 관련해 선수들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다들 순수한 열정으로 자신의 밥벌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온 직업인들 입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도 아니고 갑자기 남북대화 한답시고 단일팀이니 어쩌니 해서 출전권에 제한이라도 생기면 그 개인의 희생은 누가 보존해 줄 겁니까. 한민족 열풍의 틈바구니에서 소외되는 개인이 생기면 안되겠습니다.


올림픽은 원래 개인과 팀들이 출전하는 경기였고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이 싸우는 게 아니라 심석희가 이상화가, 최민정이 나가서 싸우는 겁니다. 이들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게 전면에 부각되느라 최고를 위해 달려온 개인의 소박한 노력들이 소외되어서는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IOC가 말하는 국가 NOC의 정치적 중립성은 조직 구성할 때만이 아니라 이럴 때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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