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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승백

유급 제도가 없는 나라의 최저학력제

최종 수정일: 4일 전


최근 최저학력제가 논란이다. 2011년에 제정된 학교체육진흥법의 시행령이 올해 개정되면서, 최저학력 기준 규정이 새롭게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 상반기 일정 학업 성적이 미달된 학생 선수는 올 하반기 최저학력 기준에 따라 경기대회 출전이 제한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자 경기대회 성적을 내야 상급학교나 실업팀으로 진출할 수 있는 학생 선수의 학부모가 연대하여 전국적으로 행정소송과 효력정지 신청과 같은 법적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제도는 전적으로 미국의 제도를 도입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미국과 한국의 최저학력제가 구조적으로 어떻게 다른 배경에서 실시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유급제도가 있는 나라다. 주마다 또는 학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최소 학업 성취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경우 교사, 학부모, 상담사, 위원회 등이 해당 학생의 성적, 출석률, 학습 능력, 사회적·정서적 발달 정도를 고려하여 신중히 유급 여부를 결정한다. 유급 위기에 처한 학생에게는 방과 후 학습이나 Summer School, 과외 학습 등을 통해 개선의 기회도 제공된다. 반면, 한국의 학셍선수는 1학기에 성적이 미달되면 만회할 기회 없이 2학기 대회 출전이 불가하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건 “누가 최저학력을 요구하는가”이다. 미국의 경우 NCAA나 주체육회 같은 경기대회를 개최하는 체육 단체들이 최저학력 기준을 요구한다. 이들이 최저학력을 요구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흔히 운동과 학업의 균형, 운동선수의 제2의 인생 설계 등을 들지만, 이런 얘기를 그대로 믿으면 사람이 단순해 지기 마련이다. 유급제도를 놓고 생각해 보자.


미국의 경기단체들은 유급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 선수에게 최저학력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운동과 학업의 균형을 맞춘다는 표면적 이유 외에도, "학생 선수들이 운동에만 지나치게 몰두해 유급당할 위험성을 방지하려는 방어적 조치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경기대회를 주최하는 단체로서, 학생 선수가 학업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학업과 운동의 조화를 강조함으로써, 경기단체가 지나치게 운동에만 치중한 학생 선수를 양산한다는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순히 교육적 이유만이 아니라, 경기단체 자체의 평판을 보호하려고 최저학력 기준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최저학력제가 법제화 되어 있고, 교육부 주도로 시행령이 적용되고 있다. “교육 당국이 학생 선수의 학업 성취를 관리하면 좋은 거지 무슨 문제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유급제도가 없는 나라에서 학생 선수에게만 학력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일반 학생은 최소한의 학력 기준을 요구받지 않으며, 성적이 부진하더라도 별다른 제한이 없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학생은 비록 전교 꼴등일지라도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전해 인생을 개척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 선수는 성적 미달이면 경기 출전을 할 수 없어, 상급학교 진학이나 직업 선택의 기회를 침해받는다. 학생 선수에게만 차별적으로 요구되는 이 제도가 이상하지 않은가. 미국은 유급이라는 제도가 선행적으로 존재하고, 경기단체가 유급제도라는 맥락 속에서 최저학력을 요구한다고 했다. 이런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맥락 없이 적용하다보니 불만을 넘어 소송까지 터져 나오는 것이다.


최저학력제의 도입 취지는 학생선수가 운동에만 몰두하지 않고, 기본적인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 본래의 취지를 생각하면 단순히 성적을 통해 출전을 금지하는 징벌적 조처여서는 안 된다. 학습권 보장은 결손된 수업 시간을 보충하고, 교육적 경험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성적이 높고 낮음을 기준으로 불이익을 주는 현 제도는 학습권 보장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있다. 법적 개선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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