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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승백

인류의 생존과 오래달리기 - 달리기를 통해 본 인간의 진화와 적응 -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고 헬스클럽, 각종 도장, 에어로빅, 탁구장 등을 찾아 스포츠 활동에 열중하던 사람들은 정부의 실내체육시설 운영 중단 권고로 운동할 곳을 잃어야 했다. 운동을 못 하고 집에만 있어 살이 확 찐 사람이란 ‘확찐자’란 신조어도 유행하고 있다. 사람 간 일상적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좋아하던 운동마저 못 하게 되다니 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이런 가운데 사회적 거리 두기와 비대면 접촉이란 기준에 부합하면서 스포츠 애호가들에게 구원자가 될만한 스포츠 활동을 소개하자면 단연 달리기일 것이다. 본 고에서는 오래달리기에 관한 인류 진화와 적응의 역사를 살펴본다.

▣ 인류의 오래달리기 선수로의 진화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인간의 신체는 연약하기 그지없다. 나름 강인한 팔다리를 지녔다고 자부할지 모르겠으나, 오랑우탄의 팔심에 비할 바가 아니며,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도 없고, 사슴처럼 빨리 달리지도 못한다. 아주 먼 옛날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의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보행을 시작했을 때도 신체 능력의 열등함을 만회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의 사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바로 오래달리기 능력 때문일 것이다.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 부시먼 두 명이 영양을 사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영양은 천천히 달리며 쫓아오는 부시먼들을 보자 긴장감 없이 달아난다. 그러나 도망가면 쫓아가고, 도망가면 또 쫓아가는 과정을 세 시간가량 지속하자 체온이 오를 때로 오른 영양은 체념하고 만다. 마침내 영양은 탈진해 쓰러지고 부시먼은 천천히 다가가 목에 창을 꽂는다. 무더위 속에서도 맨살 피부와 땀샘을 이용해 오래 달릴 수 있게 된 인류가 활용한 ‘추격 사냥(persistence hunting)’의 방식이다. 더위에 지쳐 밤에 사냥하는 다른 맹수들을 피해야 했던 호모사피엔스는 이렇게 낮에 오래 달리는 방식으로 사냥했다. 이 과정에서 피부를 덮었던 털은 자연스럽게 퇴화하고 땀을 배출하는 인간 특유의 체온조절 양식을 얻게 된다. 인류의 장거리 달리기 선수로의 진화는 다름 아닌 생존(사냥)을 위한 적응이었다.

▣ 조깅 혁명: 건강을 위한 달리기 시대

요즘은 각종 성인병 예방과 건강을 위해 걷고, 달리는 것이 상식인 시대이다. 그러나 천천히 오래 달리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개념이 생겨나고 조깅 붐이 일어난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의사들은 심장질환자에게 상태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며 몇 주 동안 침대에 누워있으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한다. 조깅의 창시자로 알려진 뉴질랜드의 리디아드는 한때 럭비선수였다. 그러나 구두공장 생산라인에서 일하게 되면서 과체중에 시달리고 심장마저 안 좋아지게 된다. 그는 몸의 어느 부분이건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할 것이란 생각에 의사에게 허락받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앞에 보이는 전신주까지 달렸고, 조금 걷다가 다시 그다음 전신주를 향해 달렸다. 이렇게 시작된 천천히 멀리 달리기에 많은 사람이 함께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이런 형태의 달리기를 조깅(jogging)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시작된 조깅 운동은 곧 미국으로 퍼져나갔다. 미국의 육상코치 빌 바워먼은 친선경기 목적으로 뉴질랜드를 방문해 리디아드를 만난다. 그는 그곳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연령대의 각기 다른 체격조건을 지닌 200여 명의 사람이 함께 뛰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6주간 함께 달리며 놀라운 신체적 변화도 경험한다. 바우먼은 미국으로 돌아와 조깅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삽시간에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숏 팬츠에 러닝셔츠를 입고 길거리를 달리는 풍경을 연출해낸다. 그리고 이것이 건강을 위해선 유산소운동을 해야 한다는, 이른바 에어로빅 운동의 시발점이기도 하였다.

고도의 산업문명은 좌업 생활방식과 영양 과잉으로 고혈압, 당뇨, 비만 등 각종 건강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전자 속 깊이 새겨진 인류의 오랜 본능, 오래달리기를 끌어내 산업문명이 야기한 신체적 병리 현상에 적응해 나아가고 있다.

▣ 코로나 스트레스를 이겨낼 무기, 오래달리기

외환위기를 겪던 시절 한국 사회에는 마라톤 열풍이 일었다. 많은 스포츠 종목 가운데 왜 하필 마라톤이었을까. 그 시절 벼랑 끝 절망을 마주했던 사람들이 마라톤에서 경험한 건 아마도 이 어려운 상황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었을 것이다. 특히 근력이나 순발력 같은 다른 체력과 달리 심폐 지구력을 바탕으로 한 오래달리기 능력은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향상될 수 있다고 한다. 40대에 조깅을 시작한 사람이 50대에는 마라토너가 되고, 선수들만 출전하는 줄 알았던 보스턴, 런던, 베를린 등 세계 유수의 마라톤 대회에 몰려드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로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큰 위기를 겪고 있다. 당연히 여겨지던 일상이 무너지고 개개인이 감내해야 할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혹시 당신에게 코로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돌파구가 필요하다면 오래달리기에 한 번 도전해 보시라. 달릴 수 있을 만큼 달리고, 조금 걷다가 다시 달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잠들었던 인류의 오랜 유전자가 살아나 이 시기를 스스로 버텨 낼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을 깨워줄 것이다. 수렵 채집시대로부터 산업문명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적응 방식이었던 오래달리기.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래달리기를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할 힘을 얻길 기원한다.


서울스포츠 2020년 8월호 No. 358 스포츠 잡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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