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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승백

재일(在日) 선수! 국민주의의 경계를 넘다

최종 수정일: 2022년 1월 10일



축구선수를 꿈꾸는 세 명의 소녀가 있다.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일본 학생, 흑인 혼혈 학생 그리고 재일조선인 학생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피부색 때문에, 입고 다니는 치마저고리 때문에, 낯선 시선에 휩싸이고, 일본인인지, 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끊임없이 질문받는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의 위치에서 생기는 정체성의 혼란들, “나는 누고일까?”, “무엇이 부족한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지난달 선보인 나이키 일본 광고 “You can’t stop us(sport)”의 내용이다. 광고는 많은 논쟁을 촉발했다. 여전히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만연해 있는 일본의 현실을 잘 반영했다는 의견과 광고가 일본 사회의 현실을 과장했다는 비판과 함께 나이키 불매운동 조짐까지 일었다. 그러나 집단 괴롭힘과 소수자, 경계인에 대한 차별이 어디 일본에서만의 문제이겠는가. 본 고에서는 한국에서 뛰었던 재일조선인 선수들을 중심으로 경계인의 삶과 스포츠의 역할을 탐색해 본다.

K리그의 재일(在日) 선수들 그리고 정대세의 눈물

“나의 모국은 일본이 아니에요. 일본 속에 또 하나의 나라가 있죠. 바로 ‘재일(在日)’이라는 나라예요. 북한도, 한국도, 일본도 아닌 ‘재일’이라는 나라가 나의 모국이고 재일인이라는 존재를 널리 알리는 것이 제 삶의 주제가 아닐까 싶어요.” 신무광이 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에서 정대세가 한 말이다. 그가 말한 재일은 어떤 나라일까? 1945년 2차 세계 대전 패망 후, 일본은 자국 내 거주하던 60만 명 정도의 조선인에게 조선적(朝鮮籍)이란 임시국적을 부여했다. 그렇게 일본 식민지배의 결과 일본에 살게 된 조선인과 그 자손 가운데 한국이나 북한, 일본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들을 재일이라 하고, 재일 한인, 재일 코리안, 자이니치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우리에게 재일조선인이라 하면 몇몇 친숙한 축구 스타들이 떠오른다. 인민 루니 정대세, K리그 소속으로 뛰면서 북한 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했던 안영학, 올해 K리그2에서 득점왕에 오르며 MVP를 수상한 안병준까지. 가장 큰 이슈는, 2010년 정대세와 안영학이 북한 대표로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였던 것 같다. 특히 첫 경기인 브라질전에서 정대세가 국가를 부르던 중 뜨거운 눈물을 흘린 장면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한국이 아닌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한 선수들, 민족학교를 나와 북한의 주체사상을 주입 받았으니 정대세의 눈물 또한 ‘북한에 대한 충성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정한다. 일본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속한 북한과 한국이 월드컵 예선전을 치르면 “북한, 남한전에서 미사일 발사 불발!”과 같은 헤드라인을 뽑아 정치적 메타포를 통해 자극적 기사를 쏟아낸다. 그들이 소중하게 지켜내 온 ‘재일’이란 경계의 정체성은 특정 국가에 속하는 순간 정치적 이념에 종속되고 공격당한다. K리그에서 4년이나 뛰었던 안영학은 일본으로 돌아간 뒤, 동료 선수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여행자증명서를 신청했지만 발급받지 못했다. 정권에 따라 이들의 입국은 허가되기도 불허되기도 해온 것이다. 경계의 위치에서 민족이란 신념을 지키며 여러 차별을 견뎌왔던 안영학을 비롯한 조선적 사람들에게 ‘국민’과 ‘비국민’이란 이분법적 시각으로 하나의 국적 선택을 강요하는 건 참으로 폭력적이지 않은가. 우리는 국가의 국민임을 당연시하면서 경계인이 겪는 차별에 무관심하다.

차별과 모순을 가로질러 온 스포츠

최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K리그에서 활약하는 재일 선수에 관한 규정을 명확히 하였다. 기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재외국민 선수는 국내 선수로 간주한다’는 규정을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재외국민 선수’에서 ‘북한이탈주민’, ‘북한주민 중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른 남한방문증명서를 발급받는 자’,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외국거주동포로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른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은 자’로 구체적으로 세분화하였다. 이로써 조선적 선수가 외국인 쿼터에 포함되지 않고 자유롭게 뛸 수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환영할 일이고, 이 과정에서 그동안 K리그에서 뛰었던 재일 선수들의 역할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스포츠는 여전히 국가주의의 격전장이며 많은 차별과 모순이 존재한다. 그러나 경기에서 함께 땀 흘린 선수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존중한다. 최선을 다해 함께 스포츠에 참가했다는 감정이 공유되는 순간 그 어떤 정치적 이념도 국위선양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 때문일까. 스포츠는 신분이나, 빈부격차, 이념 등 그 어떤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어 사회의 그 어떤 분야보다도 선도적으로 평등이란 근대세계의 보편적 가치를 전파해왔다. 종교적 이유로 여성의 참여가 극도로 제한적인 국가에서도 (히잡을 쓰고 맨살을 최대한 가리지만) 올림픽에 출전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경우 여성에게 금지되었던 축구장 출입이 허가되면서 여행, 운전 등 사회활동의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이처럼 스포츠는 세계 각처에서 차별과 불평등, 소외의 장벽을 가로지르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전파해 온 것이다.



나이키 일본 광고에 등장했던 세 명의 소녀들은 그들에게 쏟아지는 차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달리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축구를 통해 결국 당당하게 웃는다. 축구가 그들에게 웃음을 안겼던 것처럼 스포츠가 전 세계의 소수자들이 경험할 사회적 차별과 모순을 극복하는데 계속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스포츠 잡학사전. 서울스포츠 2021년 1월호 No.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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