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체육진흥회
학교는 교육기관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교육적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그런데 운동부 운영과 관련하여 그게 잘 안된다. 교육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일들이 학교 운동부를 중심으로 계속 일어난다. ‘운동만 하는 기계’란 그 부작용을 단적으로 묘사한 말이다. 그래서 전인적 민주시민 양성을 위해 학교체육진흥회라는 걸 만들고 이사진을 교육부 추천 2명, 시·도교육청 추천 3명, 문체부(대한체육회 포함) 추천 3명, 외부 2명으로 구성하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기존의 그 자체 조직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래의 조직이 제대로 역할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자꾸 뭔가를 만들어 해결하는 건 직무유기 일 뿐이다. 운동부도 마찬가지이다. 운동부 애들이 수업을 안 들어오면 교사는 결석 처리를 해야한다. 그게 교사이 당연한 의무이다. 지나친 훈련, 빈번한 대회 출전이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학교장은 강력하게 제지해야 한다. 그게 학교장으로서 학생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운동부를 교육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원칙을 정확하게 세우고 선생과 교장이 제 역할을 잘하면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원칙이 일선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관철 될 수 있게 교육부와 교육청이 적극 나서야 한다. 전국의 학교 운동부 운영 원칙을 교육부가 정하고 각 교육청에 하달해서 학교 운동부를 교육적 목적에 부합하게 운영하도록 해야한다. 그런데 선생도 있고, 교장도 있고, 교육청도 있고, 교육부도 있는데, 도대체 운동부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학교 운동부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어떤 기구에서 직무유기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체육진흥회를 만들었다. 내 상식으로 보건데 이 조직의 목적은 ‘학교 운동부에 대한 규제 강화를 통한 학교체육의 정상화’이다. 운동부에서 배제되어 온 교육의 회복이다. 이 경우 기존 엘리트선수 육성 기관으로서 학교운동부는 그 기능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제한하는 게 정상이고 필요한 기관이 있다면 그것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이 조직에 문체부나 대한체육회 인사가 이사회 멤버로 들어가 있다.
나는 학원스포츠의 정상화를 위해 문체부나 대한체육회가 학교운동부 관련 정책에 접근금지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체부나 대한체육회의 목적은 '엘리트 선수 육성'이다. 반면 학교는 교육이다. 학교 운동부가 문제인 이유는 학교운동부가 학교의 목적이 아닌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경기단체 지방체육회 등 체육단체의 목적을 관철하기 때문이다.
전문 운동선수를 키우는 건, 교육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육이 목적이 아니라 이기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하니까. 문체부나 대한체육회, 경기단체는 학교 운동부 대상 경기대회나 개최하고 운영하는 역할만 하면 된다.
학교 체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학교와 교육청과 교육부가 똘똘 뭉쳐야 한다. 학교 운동부를 교육부의 업무 범위 안에 가두고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간섭하지 못하게 해야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사실. 한국은 엘리트 선수의 육성기관의 역할을 오래전부터 학교가 감당해 왔다는 것이다. 학교는 스포츠활동에 입문하고 즐길 수 있는 사회화 주관자의 역할을 감당할 순 있지만 전문 운동선수를 육성하기에 적절한 기관은 아니다. 수업의 연장선에서 운동부를 운영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육의 일환이다. 특수 목적 학교가 아닌데도 수업 빼고 맨날 시합 나가고 전문적 운동선수가 되기 위한 빡센 훈련을 시킨다? 그런 건 필요에 따라 각자 전문 스포츠 사설 아카데미를 찾아 보충할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 그런 역할을 하는 조직이 미비했기 때문에 학교가 전문운동선수의 육성기관의 역할을 해 왔던 거다. 여기서 발생한 혼란이 엘리트의 육성과 학교체육의 정상화를 혼돈한다는 거다. 이러다 보니 ‘학교체육의 진흥’, ‘엘리트 선수의 육성’, ‘공부하는 학생선수 육성’ 등의 갖가지 개념이 모두 짬뽕되어있을 뿐 아니라 이 모든 문제를 학교라는 체계 안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학교 체육의 진흥이란 '공부도 운동도 모두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더 많은 학생들이 스포츠에 참여할 것이고, 더 많은 풀에서 선수가 배출되니 학원스포츠가 활성화될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엘리트 스포츠도 발전할 것이다'란 생각이다. 나는 이것을 다른 체계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하나의 체계 안에 넣다 발생한 선순환에 대한 망상이라 생각한다. 엘리트 선수는 그 직업의 선수가 사회적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환경이면 많이 배출된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상적인 학교 교육으로 학력자본을 축적하는 게 어려울 경우 사교육을 찾는다. 운동부도 마찬가지다. 운동부 포함 모든 학교의 스포츠 활동은 수업의 연장선에서 가는 것이고 필요한 전문체육의 요소는 각 개인의 필요에 따라 학교 밖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 운동부가 엘리트선수의 육성과 같은 사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할 것까지 죄다 하고 있는 형국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스포츠가 진흥한다? 그래서 저 기관도 그 이름이 ‘학교체육관리회’ 내지 ‘학교체육감시회’가 아닌 ‘학교체육진흥회’이다. 학교체육진흥이란 곧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는 학생선수를 많이 배출하는 것" 주로 엘리트 운동종자들을 벌레 보듯이 하는 교수 학식충들의 생각이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기사다.
기사가 말하는 한국형 엘리트 체육의 문제는 “중고생 시절부터 공부를 포기한 채 운동에만 몰두하며 모든 퇴로를 닫은 탓에 은퇴 후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애들이 운동부를 안 한다"는 것이다. 고로 한국의 엘리트 체육 문제 해결을 위해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면? 그것은 좋은 일이지 그게 엘리트 스포츠의 성공을 의미하진 않는다. 나는 열심히 운동한 선수에 대해 사회 적응에 어려움이 있다느니, ‘운동만 하는 운동기계’라느니 꼬리표를 다는 건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무식한 느들을 내가 반드시 공부하게 만들겠어."
학교에서 엘리트 선수를 육성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프로페셔널이 되려는 어린 선수가 꿈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을 왜 혐오를 담아 표현하는가. 호날두도 운동만 하는 운동기계였고, 김연아도 운동만 하는 운동기계였고, 손흥민도 운동만 하는 운동기계였다. 호날두처럼, 김연아처럼, 손흥민처럼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열심히 꿈을 향해 달리는 학생선수들을 기계니 어쩌니 대단히 문제가 있는 인간으로 매도하는 건 학식충들의 피해의식과 교만함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학교체육진흥회 통해 학교가 본연의 교육적 관점으로 학교운동부를 관리하길 바란다. 그리고 엘리트 선수의 육성, 공부하는 학생선수, 전인적 인격형성 등 모든 걸 학교라는 틀에서 해결하려는 우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엘리트 선수의 육성은 다른 차원에서 분리하여 생각해야 한다. 학교체육의 정상화란 운동부에 교육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지 공부하는 학생을 만드는 것도, 엘리트체육을 발전시키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학교체육진흥회가 학교운동부 운영과 관련한 명확하고 엄격한 관리 기준을 제시하고 운동부의 파행적 운영을 제대로 관리 감독할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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