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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한승백

한국 아파트에는 왜 테니스장이 많은가?

최종 수정일: 2022년 1월 14일

아파트 단지 내 의무설치 시설로서 테니스장

주택은 자신이 속해있는 실제 계층보다 더 상위 계층에 속해 있음을 입증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발레리 줄레조, 2007). 이 같은 관점에서 공동주택 내 설치되는 부대시설에 대한 입주자들의 선호는 편의성이나 실용성보다는 계층적 특성을 나타내거나 고급 이미지를 지닌 시설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테니스 대중화 이전, 다시 말해 상류계급 스포츠란 인식이 남아있던 시절, 공동주택 내 테니스장을 설치하는 것은 주거공간의 품격을 한결 높이는 일이었다. 한국사회의 아파트가 (90년대로 넘어가면서) 점차 주거 공간에서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그 본질적 의미가 변질되어지는 가운데 아파트분양 광고들이 고급스러운 주거 공간을 의미하는 ‘유럽풍 레저타운’, ‘프리미엄 하우스’ 등의 광고카피를 내세우면서 으레 부대시설로 테니스장을 소개하기도 했던 것은 이 같은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김대현, 임승빈, 1999; 발레리 줄레조, 2007: 42).


자산증식의 수단이 된 한국의 아파트에는 많은 테니스장들이 들어섰다. 그러나 아파트 테니스장의 대량 생산의 원인을 고급 스포츠란 테니스의 이미지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상류계층의 스포츠라 해도 그것이 반드시 테니스장에 국한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테니스장의 대량생산의 원인을 제도적 측면에서 살펴본다.



60년대 마포아파트에서 붕괴사건이 있었던 와우아파트에 이르기 까지 초창기 한국의 아파트는 소형 국민주택으로서 ‘고층 판자촌’이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세성을 벗지 못했다. 이런 한국의 아파트에 테니스장이 처음 설치된 것은 1970년 한강맨션이었다. 앞 절에서 70년대 초, 서울 도심의 테니스장을 도심 속 여가공간이자 차별적 구별짓기의 공간으로 보급된 시기라 설명한 바 있는데, 이 시기에 한강맨션의 부대시설로서 테니스장을 설치했다는 것은 그 공간이 추구하는 방향에 부합하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한강맨션은 온냉수가 공급되고, 욕조, 샤워, 양변기와 침대생활이 가능한 호화판 현대식 아파트로 기존의 아파트와는 차별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름에 ‘부유층이 사는 저택’이라는 의미의 ‘맨션’이 붙여진 것도 이 같은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매일경제, 1969.10.23; 발레리 줄레조, 2007: 36).


서울의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등장은 1970년 동부이촌동단지를 필두로 강남 개발의 신호탄이 된 반포단지(1973~1978), 압구정 현대단지(1975~82) 그리고 80년대 각종 규제완화로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목동(1983년), 상계동(1986년)의 신시가지의 건설 뿐 아니라 서초, 강남, 송파, 강동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연이어 건설되었다(발레리 줄레조, 2007: 36~45). 이들 대규모 단지들은 거의 대부분 옥외 부대시설로 단지 내 테니스장을 갖추었는데, 그것은 공동주택 내 실외체육시설 설치에 대한 의무규정에 따른 것이었다. 즉, 테니스장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설 시, 의무 설치하도록 강제된 옥외체육시설의 몇 가지 선택 사항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최초의 단지 내 체육시설의 의무규정이 생긴 것은 1979년 ’주택건설기준에 관한 규칙(1979. 8. 22. 개정 및 시행)‘이었고, 이후 몇 차례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표 2>는 이를 정리한 것이다.



공동주택 내 실외체육시설 설치에 대한 의무규정 주택의 질을 향상시키고 적정한 시설을 갖춘 주택을 건설 공급한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 법안이 최초 제정된 79년 당시, 정구장은 수영장, 배구장과 함께 10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 건설시 의무 설치하도록 한 옥외시설 가운데 하나였다. 수영장은 계절적인 영향을 받는 시설이고 배구장 보다는 테니스장에 대한 사회적 선호가 높았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 법안은 두 차례의 전면개정을 거쳤는데, 1985년에는 배드민턴장, 농구장, 축구장, 야구장 등으로 선택할 수 있는 종목이 늘어났고, 1999년에는 주택 단지 내 설치 시설을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시행령」에서 규정하는 체육시설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해당하는 시설은 다음과 같다.

골프장, 골프연습장, 궁도장, 게이트볼장, 농구장, 당구장, 라켓볼장, 럭비풋볼장, 롤러스케이트장, 배구장, 배드민턴장, 벨로드롬, 볼링장, 봅슬레이장, 빙상장, 사격장, 세팍타크로장, 수상스키장, 수영장, 스키장, 승마장, 썰매장, 씨름장, 아이스하키장, 야구장, 양궁장, 역도장, 에어로빅장, 요트장, 육상장, 자동차경주장, 조정장, 체력단련장, 체육도장, 체조장, 축구장, 카누장, 탁구장, 테니스장, 펜싱장, 하키장, 핸드볼장 기타 국내 또는 국제적으로 행하여지는 운동종목의 시설로서 문화체육부장관이 정하는 것(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시행령 [별표1] 체육시설의종류, 1999년 기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파트 옥외체육시설의 범위는 1999년 개정안 이후 완전자율화 되었고, 테니스장, 수영장 등 몇몇 시설에 국한되었던 아파트단지 내 체육시설에 대한 강제성은 소멸되었다.


70년 한강맨션을 시작으로 90년대까지 대규모 단지 마다 건설되었던 테니스장은 한국 테니스장의 사회적 생산의 주요한 한 축으로서 테니스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주거공간에서 점차 자산증식의 일환으로 변해 갔던 80~90년대를 거치면서 과정에서 테니스장은 도심의 아파트들은 옥외 공간 차별화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

한승백. (2013). 도시 공간 테니스장의 사회적 생산과 소멸에 관한 연구: 사설 및 아파트 테니스장을 중심으로.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 26(1), 12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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