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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예비고사 시대의 체육특기자제도

최종 수정일: 2022년 1월 15일

1969학년도부터는 ‘대학입시자격고사(이하 예비고사)’가 실시되었다. 6년 만의 국가고사 부활이었고, 예비고사를 통과한 학생에 한하여 대학별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다만 체육계열 학과 입학생의 경우 교육법 제111조 1항(법률 제2045호)에 “예능 또는 체육학계의 학과에 입학할 자는 예비고사를 거치지 아니할 수 있다”는 예외를 두어 예비고사를 면제해 줬다. 체육관련 학과가 있던 대학은 예비고사제에서도 특기자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셈이다.

문제가 된 것은 고려대와 연세대를 비롯한 체육학과가 없는 대학들이었다. 63학년도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가고사의 면제 혜택이 체육계열 학과에만 주어짐으로써, 체육관련 학과가 없는 대학들이 체육특기생을 모집하기 위해서는 체육특기 지원자가 자력으로 예비고사를 통과하거나, 체육학과를 신설해야만 했다(동아일보, 1968.11.14.). 그런 점에서, 예비고사의 실시는, 다시 한 번, 입시제도의 변화가 어떻게 대학 행위자들의 이해를 자극함으로써 특기자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이 연구의 또 다른 제보자 L(40년 생, 당시 대학교수)에 따르면 당시 대학체육회는 고대, 연대 출신의 경기인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대한체육회는 실태조사를 통해 서울시내의 70개 대학에 소속된 1,313명의 대학생 등록 선수 가운데 일반학과에 속한 선수가 840명(64.1%), 체육관련 학과 특기생은 469명(35.9%)임을 밝혀내고, 체육특기자의 일반학과 재학비율이 높기 때문에 체육학과를 신설하거나 인원을 증원하는 등 체육특기자에 대한 구제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경향신문, 1968.11.16.; 동아일보, 1968.11.16.).

그러나 문교부가 이를 거부함에 따라, 예비고사 실시 첫해인 69학년도 입시에서 매년 40~50명의 체육특기자를 선발해 오던 연세대와 고려대를 비롯해 체육학과가 없는 대학들은 예년처럼 운동부를 선발하지 못하였고, 예비고사 합격자에 한하여 운동부 인원을 충원할 수 있었다(경향신문, 1968.11.28.; 동아일보 1968.11.18., 1968.12.25.). 야구부 창단을 계획하며 15명의 선수를 사전 스카우트하여 합숙훈련까지 했던 중앙대의 경우, 예비고사로 인해 입학예정이던 야구부 선수들을 전원 입학시키지 못하면서 창단을 취소해야 했다(동아일보, 1969.02.07.). 예비고사는 대학들의 정원 외 선발에 대해 제동을 걸기 위한 조치였기 때문에 정원 내에 있으면서도 마치 정원 외처럼, 학업능력과 무관하게 선수를 수급하던 스카우트 관행에 큰 위협으로 작용했다.

스카우트 관행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대학과 경기인들에게 가용했던 유일한 돌파구는 바로 체육관련 학과의 신설이었다. 예비고사와 같은 일반입시의 적용을 받아 우수선수를 잃을 바에는, 체육관련 학과를 따로 만들어 선수들을 배속함으로써 기존처럼 성적과 무관하게 선수를 수급하는 스카우트 관행을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70학년도 입시를 앞둔 상황에서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동국대, 건국대 등 서울의 5개 대학과 마산대, 강원대, 부산여대 등 지방의 3개 대학에 정원 30명의 체육과가 신설되었고, 공주사대 체육과는 10명을 증원했다(경향신문, 1969.12.18.). 그 결과 71학년도 입시에서 고려대와 연세대는 체육학과 정원 30명을 모두 체육특기생으로 선발할 수 있었다(동아일보, 1971.02.02.).

이렇게 동일계 진학 규정을 우회하는 대학과 체육계의 학과신설 추진을 정부가 승인했다는 사실은 정부의 체육특기자제도에 대한 기본 방침이 ‘적극적 개입’보다는 ‘소극적 방기’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예증한다. 실제로 69년도 예비고사의 실시는 물론 63년도 최초의 대입 국가고사 실시 및 64~68년의 대학자율입시와 같은 조치들은 체육특기자 입시에 대한 교정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교육당국의 대입정책은 불가피하게 특기자제도의 스카우트 관행을 더욱 수월하게 하거나 차질을 초래한 것일 뿐, 대학이나 체육계가 그에 맞서 압력을 행사할 경우 언제나 별도의 예외조치를 마련함으로써 ‘임의적 방식의 선수수급’을 용인해왔다. 정부의 입장에서 특기자제도는 입시에 관계되기 때문에 입시제도 내에 포함시켜 유지하기는 했으나, 사실상은 입시제도와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나 예외를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내는 제도라는 점에서 ‘골칫거리’가 아니었을까?

흥미롭게도, 운동선수의 육성이 대학의 이해(interests)를 전적으로 지배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입장이 전개되기도 했다. 가령 예비고사 면제혜택을 받던 몇몇 예체능계 대학들 중 일부는 예체능계 특기자도 예비고사를 거쳐야 한다고 문교부에 요청하기도 하였다(서울대 미대, 사범대 체육학과, 서강대학 등). 이들 대학은 졸업생이 대부분 교사로 진출하기 때문에 교사의 자질을 높이기 위해 예비고사를 거쳐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경향신문, 1971.06.03.; 경향신문, 1971.08.09.).

그 결과 두 개의 법적 조치가 취해진다(경향신문, 1972.10.05.; 동아일보, 1972.10.05). 첫째, 72년 12월 16일에 개정된 교육법은 기존 체육특기자의 예비고사 면제 근거가 되었던 “예능 또는 체육학계의 학과에 입학할 자는 예비고사를 거치지 아니할 수 있다”는 문구를 삭제했다(교육법 제111조 1항, 법률 제2366호, 전문개정 1972.12.16.). 이에 의거해 모든 체육특기자들이 예비고사는 치르도록 하되, 둘째, 성적에 상관없이 대학이 특기자의 합격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대학입학예비고시령(대통령령 제6844호, 1973.9.6., 일부개정) 제16조를 아래와 같이 개정하였다.

제16조 (합격자 결정방법) ① 합격자는 시·도별로 고사교과목의 총성적의 다득점순으로 결정한다. 다만, 예능계 또는 체육계의 학과에 입학하고자 하는 자는 이를 따로 분리하여 성적을 사정하고 합격자를 결정할 수 있으며, 예능 또는 체육특기자는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교부장관이 따로 정하는 기준에 의하여 합격자를 결정할 수 있다. <대학입학예비고사령, 대통령령 제6844호, 1973.9.6., 일부개정>

여전한 예외조항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으로 예비고사에 응시토록 한 이 조치는,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체육특기자제도에 보다 정당한 입시제도로서의 성격을 부과하였다. 대학당국이 임의로 스카우트를 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하면서도, ‘시험을 면제받은 선수’라기보다, ‘일반학생과 같은 시험을 치르고 들어온 학생’이라는 외관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체육특기자제도가 예비고사 응시를 의무화하는 동시에 예외를 허락받게 된 이 ‘분기점’은 대학이 스스로는 입학자격을 갖추기 어려운 체육특기생을 스카우트하던 ‘관행’이 예비고사 응시라는 보다 정당한 ‘입시제도’의 절차 속에 포함됨으로써, 더욱 확고하게 제도로 공인된 시점이라 할 만하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입시제도라는 형식(rules-in-form) 속에, 실제(rules-in-use)로는 스카우트 관행을 용인하는 체육특기자제도 성격이 결과했다고 할 수 있다(Lowndes, Pratchett & Stoker, 2006).


조선일보 1968년 11월 16일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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