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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소년체전과 스포츠혁신위원회 그리고 공부하는 학생선수

최종 수정일: 2022년 1월 11일

올 초 스포츠계 미투 운동을 계기로 결성된 스포츠 혁신위가 제일 처음 언급한 건 국가주의 스포츠의 포기와 소년체전 폐지 개편이었다. 현상은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이었는데 국가주의 스포츠 포기와 소년체전 폐지라니 이해가 가나? 소년체전에 출전하는 선수가 전국체전에 출전하고, 전국체전에 출전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어 국위 선양을 하고, 그런 시스템이 지금과 같은 성폭력 사태의 구조로 작동했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이 같은 혁신위의 행보를 2000년 장희진 파동으로 형성된 ‘공부하는 학생선수’ 담론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위에서 얘기한 도식이 이해가 가니까. 소년체전이니, 인권이니 이런저런 개념들이 등장하지만 모두 공부하는 학생선수의 변형 담론들이며 기본 기조는 이번 혁신위 권고안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공부하는 학생선수 담론을 정치적 도구로 삼은 학교체육 전문가 집단이 오늘날 한국 스포츠 전체의 개혁 중심 세력으로 탄탄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공부하는 학생선수 담론에 기반한 담론 투쟁에서 승리한 결과 아니겠나.

그렇다면 혁신위는 왜 제일 먼저 소년체전을 들고 나왔을까. 그들에 따르면 소년체전은 72년 정부가 앞장서서 ‘스포츠 엘리트 육성’을 위해 기획한 국가주의 스포츠의 산물이다. 정말 그럴까. 이 얘기에 앞서 먼저 전국체전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박정희 시절 전국체전은 1년 중 가장 큰 행사였다.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홍보가 이루어졌고, 개최지의 임명직 시도지사는 성대한 전국체전 개최 여부에 따라 출세의 명운이 가늠되었다. 동원된 학생들은 화려한 카드 섹션과 매스게임을 통해 박정희의 초상을 전시해 우상화했고, ‘수출 100억 불 달성’과 같은 정권의 성취 또한 반복적으로 찬양되었다. 열기를 더하기 위해 대규모의 선수단이 동원된 건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종목들이 변변한 실업팀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각 시도의 일반부는 물론이고 고등부 심지어 중등부도 참여했으며,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해외동포들까지 선수단을 꾸려 대회에 참가하였다. 재일동포였던 성훈이네 아버지이자 사랑이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만난 것도 그 시절 전국체전이었다. 이 행사의 주인공은 박정희. 그는 정식 대통령으로 취임하기도 전인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부터 총 맞아 숨진 79년까지 모든 전국체육대회에 참석하여 축사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중등부는 전국체전에 이미 참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국민학교 부는? 문교부가 금지 조치를 내려 종합 대회는 없었만 60년대 후반 이미 국민학생부도 종목별로 전국대회가 성행하고 있었다. 왜냐 당시 국딩들은 이미 체육특기자 제도를 통해 중학교에 입학하고 있었으니까.

다시 전국체전으로 돌아가면, 전국체전은 박정희가 정권의 성취를 전시하고 스스로 우상화하기 위한 핵심 무대였다. 아마도 그는 전국체전이 융성하면 할수록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소년체전의 분리독립에 그는 미온적이었다. 그러니까 전국체전이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져 서울에서조차 대회 개최가 벅찰 지경에 이르자 대한체육회는 규모 축소를 위해 1970년 주니어부의 분리독립을 사업 계획으로 결정한다. 근데 70년에 분리 개최를 못한다. 왜냐하면 정부 당국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통치수단으로 활용했던 전국체전의 규모가 축소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자 대한체육회가 짱구를 돌린 결과가 이른바 ‘스포츠소년단’의 창설이다. 대한체육회는 일본에서 유행하던 스포츠소년단을 도입해 전국에 보급한다. 71년 초반의 일이다. 그리고 불과 1년 만에 이 스포츠소년단이 모태가 되어 72년 처음으로 ‘스포츠소년단 창단 기념 제1회 전국스포츠소년대회’라는 대회가 개최되었다. 그 이름에 맥락이 담겨있다.

요약하면 중학생을 포함해 성대하게 치러지던 전국체육대회는 비대화의 문제에 봉착했고, 대한체육회가 그 해결책으로 추진한 게 국민학교 5, 6, 중학교 1, 2, 3을 포함하는 주니어부의 독립이다. 72년은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싶겠지만 이전부터 전국체육대회 속에 함께 참가하던 주니어부가 따로 떨어져 나온 첫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구체적으로 이 대회에 대해 뭐라고 얘기했을까. 이건 소문내지 말고 정말 너만 알고 있어라.

“대단히 불쾌하오. 어찌 대한체육회는 외래어를 그렇게 좋아하시오?”

75년 4회 대회부터 전국스포츠소년대회가 전국소년체육대회로 이름이 바뀐 이유다. 이런 맥락을 아는 사람이라면 국가주의 스포츠에 기반하고 엘리트스포츠 육성을 위해 72년에 만들어 졌다는 소년체전 국가 기획설을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72년 체육특기자 제도 도입설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운동만 하면 대학까지 입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학생선수의 엘리트화를 제도적으로 보장했다는 체육특기자제도가 72년에 정부의 기획 하에 짠~ 하고 도입됐다? 이 얘기는 그동안 많이 했으니 생략. 소년체전이나 체육특기자제도를 국가주의 스포츠의 결과로 맥락 없이 퉁쳐 버리는 이런 주장들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스포츠가 떠 안은 현안을 진단하는데 큰 걸림돌이다. 소년체전 → 국가주의 → 나쁜 거 = 없애자 같은 단순 논리 말이다.

위 문제들은 사실 왜곡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문제를 단순화 시켜 다른 논의의 가능성을 폐쇄한다. 가령 지금의 시점에서만 봐도 소년체전은 문제다. 왜냐 소년체전은 학생선수의 경쟁에 학교뿐 아니라 교육청 나아가 지자체의 이해까지 모두 함께 결부되도록 만들어 놨으니까. 도지사는 물론 교육감까지 나서 경쟁을 치르니 장학사들이 들고뛰고 교장도 장단 맞추고, 지도자들은 모든 역량을 소년체전에 집중하고 이렇게 아이들의 경쟁이 어른들의 경쟁이 되다 보니 수업결손을 비롯하여 온갖 편법이 난무하는 온상이 되었다는 거, 이게 문제 아니가. 교육 체계 내에서 기본적으로 짊어져야 할 의무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에 예외를 인정받으며 전문 운동선수의 육성이 가능한 건 어른들의 이해가 편법을 조장하기 때문이고 그 모티브가 되는 게 결국 전국체전이 소년체전 아닌가. 이런 이해의 연결만 차단하면 운동선수로서 꿈을 가진 학생선수가 같이 경쟁하는 게 도대체 뭣이 문제인가. 이런 류의 논의의 장을 국가주의 스포츠의 문제로 단순화 시켜 버리면 흑백논리만 남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국가주의 스포츠의 폐해로 퉁쳐 버려진 72년 소년체전 정부기획설과 72년 체육특기자 제도 국가 도입설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누구에 의해 전파되었나. 나는 이 얘기들이 2000년 탄생한 공부하는 학생선수 담론의 정치화 과정에서 창조 아니 날조 되었다고 생각한다. 찾아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 얘기를 생산하고 반복 재생산해온 건 학교체육개혁진보 진영이다. 왜 그랬을까.

공부하는 학생선수 담론은 기본적으로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이다. 운동만 하고 교실에서는 쳐 자빠져 잠만 자는 학생선수가 못 배우고, 모잘라서 한국스포츠의 지속적인 문제를 양산하고 있으니 이들에 대한 교정 교화를 통해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들겠다는 발상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 그런데 멀쩡한 사람을 모지리 만들어서 교화하고 교육시키겠다니, 교만해 보이고 당위성을 확보하기 어렵지 않겠나. 그래서 등장하는 게 엘리트 진영에 대한 악마화(demonization) 전략이다. 즉, 체육특기자제도나 소년체전을 72년 언저리에 발생한 사건으로 해석함으로써 72년 →유신 → 박정희 → 체육특기자 → 소년체전 → 영구 독재 → 반민주 = 적폐 또는 과거의 산물로 연상토록 하는 것이다. 박정희 체제에서 아직도 머물고 있으니 교정교화 받고,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에 집어넣어 갱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은근히 그러나 치밀하게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은가. 기획인지 아니면 사람이 정말 보고 싶은 것만 보이기 때문이지 알 수 없지만 시작 시기를 70년대 초반으로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현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의 예봉을 확 꺾어 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디테일을 상실했으며 많은 현상을 오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담론 투쟁의 전술은 정말이지 효과적이었다. 스포츠계에 산적한 그 수많은 문제를 ‘공부하는 학생선수’ 이 단 한 가지 담론의 변주를 통해 해결할 수 있으니까. 성폭력 문제가 왜 일어났나. 공부는 안 하고 운동만 해서 사람이 덜 돼서. 소년체전이랑 성폭력은 무슨 관계가 있나. 소년체전에 출전했던 선수가 전국체전에 출전하고 국가대표가 되어 국위 선양을 하고 그렇게 운동만 해 승리 지상주의에 매몰되고, 운동만 했으니 폭력은 물론 성폭력까지 저지르기 때문에. 왜 스포츠 인권이 문제인가. 공부는 안 하고 운동만 한 운동기계들이 체육 현장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만들었으니까. 그야말로 만병통치약 아닌가.

엘리트 진영에서 성폭력 같은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교육, 교정, 사람 만들기를 기본으로 하는 ‘공부하는 학생선수’ 담론은 힘을 얻는다. 그리고 지난 20년 간 반복된 담론 투쟁을 통해 학교 체육 개혁진보는 성공적으로 전체 스포츠계의 개혁론자로서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치밀하지 못반 분석과 현실의 왜곡은 개혁을 지난하게 만들고 현장의 반발을 살 뿐이다.


지난 2000년 올림픽 출전을 위해 태릉선수촌에 입촌해 훈련을 받던 중학생 장희진은 선수촌을 이탈해 학교에 간다. 그때 장희진이 학교가 아닌 따른 데를 갔으면 어땠을까. 학교 말고 다른 데를 갔으면 장희진이든 누구든 훈련 장소의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강제 입촌해 훈련하는 것이 얼마나 전체주의적이고 폭력적인가 뭐 그런 논의를 벌였을 텐데. 장희진이 하필 학교로 가는 바람에 공부하는 학생 선수가 모든 개혁의 문제를 흡수해 버리는 그래서 그 개혁의 발걸음이 참 여러모로 꼬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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