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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부동산 조세정책과 강남 테니스장



한국의 도심 속 테니스장의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요인 중 하나는 부동산 조세정책이다. 과거 테니스장 경영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테니스가 부동산 붐에 편승해 저변확대, 발전해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이다. 1980년대 부동산 조세정책의 영향으로 많은 사설 테니스코트들이 생겨났고, 정책이 변화에 따라 한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공한지세의 면제가 도심 속 테니스장 건설에 미친 영향

1974년 1월 14일, 유신헌법 아래 공포된 긴급조치 즉,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대통령 긴급조치 제3호, 대통령령 제7042호)’에서는 공한지세를 포함한 대대적인 조세규정이 제정되었다. 여기에는 고급주택, 사치성물품, 승용차, 공한지 등에 대해 높은 세율을 적용하여 사치성 재산에 중과하는 내용이 담겨졌다. 테니스장은 73년 유류파동 이후 정부에 의해 ‘사치성 레저 시설’로 분류되었던 바, 과세대상인 공한지로 분류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 결과 긴급조치시행일인 1974년 1월 14일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 이미 테니스코트로 사용하고 있던 땅에 한하여서는 공한지에서 제외하였다. 이미 운영하고 있던 영업용 사설코트들은 영업감찰을 교부받아 영업세를 납부한 실적만 있으면 공한지세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한 것이다.


반면 긴급조치(1974.01.14) 이후에 설치될 테니스장들에 대해서는 도시계획법에 따라 별도의 시설지정을 받아야 공한지세를 면제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대한체육회 지정 선수 훈련용 코트에 대해서만 이 규정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74년 1월 14일 긴급조치 이후에 설립된 사설코트들은 공한지세의 징수 대상에 해당하였다(동아일보, 1974.04.24; 강인석, 김종대, 신임범, 1988).


1973년 유류파동이후 골프장과 테니스장은 공히 사치성 레저시설로 분류되었었는데, 이 두 시설을 비교하면 골프장의 경우 긴급조치에 따라 입장세와, 취득세(100분의 15)를 크게 인상하여 중과세의 적용 대상이 되었다. 반면 테니스장의 경우는 긴급조치 이전에 설치된 시설의 경우에는 그대로 운영하되, 다만 신설되는 코트들에 한 해서만 공한지세를 통해 중과세의 적용대상이 되도록 하였다. 당시 호화시설 인식되었던 기존의 사설 테니스장들은 공한지세를 면제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시설의 안정적 운영에 분명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조치는 새로운 테니스장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었고, 기존 시설과 비교되어 오히려 코트 생산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1974년 1월 14일 시행된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대통령긴급조치” 제3호는 1년간 실시 후 지방세법 시행규칙’으로 법제화된다. 이 가운데 제78조 3은 공한지에서 제외할 토지를 명시하여 공한지세의 면제 대상을 밝히고 있는데, 테니스장 관련 내용은 제78조 3의 제6호 제2항에서 다루어졌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74년 1월 14일 이전에 설치하여 계속 사용하고 있는 정구장용 토지(영업용정구장은 영업세법 기타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한 과세면제 또는 소액부징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1기분이상의 영업세 납세실적이 있는 토지). 다만, 코오트 1면당 면적이 240평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그 초과부분은 제외한다(지방세법 시행규칙 제78조의 3의 제6호 제2항, 1975.02.21)

‘지방세법 시행규칙 제78조의 3’은 1975. 1. 1. 제정된 이래 8차례의 개정을 거쳐 1986년 12월 31일 폐지되었다. 이 가운데 1982년 3월 25일의 개정안은 테니스장의 보급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서는 "1974년 1월 14일 이전"이란 문구가 삭제되었는데, 이에 따라 74년 긴급조치 이후에 설치된 테니스장 일지라도 공한지에서 제외되어 공한지세를 면할 수 있게 되었고, 향후 설립될 모든 테니스장들이 공한지세 제외대상으로 분류되었다. 다음은 82년 3월 25일 개정된 지방세법 시행규칙 제78조의 3 제6호 제2항의 내용이다.

정구장용에 상시 사용하고 있는 토지(영업용정구장은 부가가치세법 기타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한 과세면제 또는 소액부징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직전기분의 부가가치세 납세실적이 있는 토지). 다만, 코오트 1면당 면적이 792제곱미터를 초과하는 경우 그 초과하는 부분과 정구장용 토지를 설치일로부터 3년 이내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는 제외한다(지방세법 시행규칙 제78조의 3의 제6호 제2항, 1982.03.25).

82년 개정된 지방세법 시행규칙 제78조의 3 제6호 제2항에 따라 사설 테니스장들은 3년 이상 사용하겠다는 계획서 또는 사용사실 증빙서류를 제출하기만 하면 공한지세 부과대상에서 제외되었다(경향신문, 1982.04.20). 사설 테니스장의 경우 대부분이 임대 경영인에 의해 운영되었기 때문에, 일정액의 부가가치세만 납부하면 공한지세를 면제 받도록 한 당시의 조치는 테니스장 경영에 대단히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였고, 사설 테니스장 설립의 강력한 유인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한 잡지에 소개된 테니스장 경영인의 인터뷰 내용은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해준다.

서울시내 대분의 상업용 테니스코트는 나대지(裸垈地)를 지주로부터 임대하여 테니스코트로 시설·영업하고 있으며 82년부터 사설 테니스코트가 공한지세 면제대상에 포함, 저렴한 토지 임대료로 인해 업자들에게 채산성이 있었고 또한 동호인들에게도 부담을 덜어줄 수 있었습니다...... 흔히 테니스코트를 ‘행정의 공백지대’라고 일컫듯이 어디에 신고할 것도 없이 코트를 만들고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만 하면 누구나 영업이 가능한데다 구청, 경찰서, 체육부 등이 행정력을 발휘할 법적 근거가 없는 곳이 테니스코트입니다 - 김종대, 테니스장 경영인 - (월드테니스, 1988: 173).

1982년 3월 25일부터 1986년까지는 조세혜택에 힘입어 서울 도심 곳곳, 특히 강남을 중심으로 테니스장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 지방세법 시행규칙 제78조의 3은 1986년을 끝으로 폐지되었지만 89년까지 대체 법률이 시행되지 않아 이 같은 추세는 계속되었다. 코트들이 경쟁이 붙으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사설 테니스장의 이용이 가능했고, 시설확충은 상류계층의 스포츠이던 테니스가 일반 대중에게 까지 보급되는데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88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차원에서 추진되었던 생활체육운동과 맞물리면서 테니스는 저변이 크게 확대되었다. 당시 서울에만 2백여 개소의 사설 테니스장이 운영 되었고, 수많은 동호회가 형성되면서 한국 테니스는 중흥기를 맞이한다. 제5공화국 시기 전체를 통틀어 테니스는 대중화 과정을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6년에 집계된 국민생활체육참여실태조사 결과에서 테니스는 육상/조깅, 축구, 체조/줄넘기, 등선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국민이 참여하는 스포츠로 집계되었는데 이전까지의 테니스의 계층적 성격을 감안할 때 이 시기 부동산 조세정책이 테니스장의 설립과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문화체육관광부, 2010: 69).

토지공개념의 도입과 도심 속 테니스장의 소멸

공한지세의 면제라는 조세혜택에 힘입어 서울 도심에는 많은 테니스장의 들어섰고 이것이 테니스 대중화에 기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한 편으로는 코트의 질적 저하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특히 테니스장의 조세혜택을 투기의 목적으로 악용하는 경우들이 발생하였는데, 투기꾼들이 토지를 구입, 공한지세를 면하기 위해 형식상 임시적 변칙코트를 설치하고 실제 사용하지 않는 사례가 속출하였다. 대표적인 곳이 당시 부동산 투기가 심각했던 서울의 강남이었고, 신흥개발지역에는 으레 빌딩과 함께 테니스코트가 우후죽순 격으로 함께 들어선 것도 이 같은 이유였다(강인석, 김종대, 신임범, 1988: 172). 이에 따라 테니스장의 개소 수는 증가했지만 클럽하우스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코트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영세운영 업체가 늘어나면서 코트의 양은 증가했지만 시설과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초래했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89년 10월에 조사된 한 통계에 따르면 당시 전국적으로 약 4백96개소의 사설테니스장이 성업 중이었는데 그 가운데 절반 가량인 2백 24개소가 서울에 몰려있었다(월드테니스, 1992). 초창기 서울을 중심으로 테니스인구가 확대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강남개발 및 올림픽유치 등으로 도시 전체의 부동산 투기 붐이 극심했던 서울에서 공한지세의 면세가 테니스장 설립의 끼친 영향이 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그 많던 서울 도심의 테니스장들이 절반 이상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는 제6공화국의 ‘토지공개념’을 도입하여 본격적인 부동산 투기 근절 정책을 추진한 데 따른 것이었다. 80년대는 한국의 부동산투기가 본격화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올림픽 특수를 타고 강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아파트를 비롯하여 부동산 가격의 폭발적인 증가가 이루어졌다(발레리 줄레조, 2007: 141).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6공화국은 ’90년 1월의 ‘토지공개념 3개 법안’을 내 놓는데, 이 가운데 ‘토지초과이득세법(89.12.30 제정)’과 ‘택지소유 상한에 관한 법률(1989.12.30 제정)’은 테니스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첫 번째, 토지초과이득세법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내용: 개발사업 등으로 정상지가 상승률을 초과하여 지가가 상승할 경우 매3년마다 초과지가 상승분의 50/100의 비율로 토지초과이득세를 과세
② 대상: 유휴지 즉 생산이나 생활에 사용하지 않고, 지가상승을 기대하고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토지. 개인소유로 생산이나 생활에 사용하지 않는 경우와 법인소유로 비업무용 토지

‘토지초과이득세법’에 따라 대부분의 테니스장들은 과세대상에 해당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강남지역 코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선수전용시설이나 종업원 연수 용 테니스장 등도 기준 면적을 초과할 때는 전부 유휴지 범위에 포함되게 되었다.

두 번째, 택지소유 상한에 관한 법률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내용: 택지를 소유할 수 있는 면적의 한계를 정하고 그 한도 이상의 소유분에 대하여 매년 초과소유부담금을 부과. 초과소유부담금은 초과소유분의 공시지가의 6/100내지 11/100에 해당하는 비율로 부과
② 대상: 서울 및 각 직할시는 660㎡(약 200평 이상), 기타 시는 990㎡(약 300평 이상), 그 외지역은 1320㎡(약 400평 이상)

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서울 시내에 위치한 대부분의 사설 테니스장들은 2백 평이 넘는 나대지로 취급, 해마다 공시지가의 1백분의 6내지 11에 해당하는 초과소유부담금을 물게 되었고(92년 1월부터), 이는 테니스장 운영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92년 테니스잡지 월드테니스에 소개된 한 테니스인의 인터뷰 내용은 당시의 과세정책이 테니스장 운영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테니스 붐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강남의 테니스코트는 80년대를 거치면서 대부분 없어졌다. 그 자리에는 대부분 오피스텔이나 주차장이 들어섰다. 내가 경영하던 청담동의 세림 코트(6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90년 말부터 토지초과이득세가 부과되기 시작하자 지주 측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철거를 요구했다. 다른 코트들도 비슷한 이유다. 2면 정도의 코트에 연 간 2~3천만 원의 세금이 부과되는데 코트사용료 수입으로는 도저히 채산을 맞출 수 없다. 이제까지의 테니스코트들의 상당수는 토지투기가 목적이었다. 공한지세를 피하고 그동안 지가상승으로 충분한 수익도 챙겼기 때문이다(장한상, 1992: 73).

89년 10월을 기준 2백 24개였던 서울의 사설 테니스장은 92년 3월에는 1백여 개 남짓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과거 테니스장을 짓고 중과세를 회피하고자 했던 지주들은 테니스장에 과세대상에 해당되면서 단층이라도 임대 건물을 개발하거나 가건물 형태라도 건축물을 짓는 편을 택하게 된다. 80년대 부동산 조세정책에 따라 테니스장은 면세대상에서 조세대상으로 바뀌었고, 서울에 있던 사설 테니스장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테니스인들은 망국적 부동산투기를 잡고, 경제혼란을 막기 위해 토지공개념 도입은 불가피했다고 인정하면서도 80년대를 거치면서 대중화의 일로에 섰던 테니스에 대한 아무런 배려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는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다.


80년대 부동산 조세정책에 편승해 이루어진 테니스장의 건설 붐은 결과적으로 테니스 대중화에 대단히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코트들이 영업경쟁이 일어나면서 저렴한 가격에 사설 테니스장의 이용이 가능했고, 올림픽 이후에는 국내에 본격화된 생활체육운동과 맞물리면서 테니스 동호인만 300만 명이란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부동산 억제정책에 따라 토지공개념이 도입되었고 수많은 테니스장들이 한 순간에 문을 닫게 되면서 서울의 테니스장들은 사람은 많고, 코트부족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사설 테니스장의 전성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테니스인들 사이에서는 토지에 공개념을 도입했듯이 테니스코트에도 공개념을 도입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이는 공공 테니스장의 공급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전국 공공체육시설 현황이 밝히고 있는 공공테니스장은 94년 서울에 23개소, 전국 85개소에 불과했지만, 2010년 서울 55개소, 전국 550개소까지 꾸준히 증가하면서 부족한 시설 공급을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한국체육과학연구원, 1996;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2010).


한승백. (2013). 도시 공간 테니스장의 사회적 생산과 소멸에 관한 연구: 사설 및 아파트 테니스장을 중심으로.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 26(1), 12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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