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소회
최종 수정일: 4월 24일
“지금의 30대에서 50대에 해당하는 ‘3050′ 세대는 기본적으로 진보 쪽으로 신념화가 이뤄진 세대입니다. 경제성장의 혜택을 특권층이 독점했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는데 이들을 끌어안지 못한 것이 여당 패배의 큰 요인이라 봐야겠지요.”
“특검법을 거부하고 정치적 복수에 집착하는 듯한 대통령의 꽉 막힌 모습 앞에서 이들이 지닌 인내심은 한계를 넘어서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세대가 모두 진보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됐다기보다는, 대통령과 정부가 이들이 진보 쪽으로 쏠리도록 통치를 했다고 봐야 합니다.”
어제 송호근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2004년에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성장주의에 대한 거역(Revolt)과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Resistance), 국가주의에 대한 거부(Rejection)가 지금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이른바 ‘386′세대의 특성으로, 이 같은 ‘3R’은 향후 계속될 것이다.”
3R을 한 단어로 오약하면 rebellious 정도 될까?
이전 세대의 사람들이 나이먹고 좌파로 사는 게 힘든 것 처럼, 그 이후의 세대가 보수로 사는 것도 힘든 시대다. 사회적 관계를 하다보면, 주변 사람들이 죄다 민주당을 지지하고, 그래야 뭔가 진보적인 사람으로 비춰지는 사회, 반대도 마찬가지다. 노인네들의 모임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면 철없고, 나라 걱정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으로 찍히기 쉽상이다. 나는 송호근 교수의 세대론적 통찰이 거시적 차원에서는 맞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정책이 진영 논리에 갇혀 있다는 것. 이번 선거도 정권심판 vs 이조심판의 구조로 어떤 새끼가 더 나쁜 새끼인지의 경연장이었지, 어떤 정책 대결이 있었나. 하나의 정책에 각기 다른 입장과 디테일의 차이에 논쟁이 오간 게 도대체 있기나했나. 양 진영의 추종자들은 패배하면 마치 나라라도 망할 것처럼 광기를 내뿜고, 나쁜 새끼 찾기 컨테스트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정치에 무관심해 지는 사회.
빨갱이 vs 토착왜구의 줄다리기 선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는 없다. 빨갱이와 토착왜구란 말은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demonization을 위한 수사일 뿐 우리 사회 어디에도 당신이 생각하는 토착왜구와 빨갱이는 없다. 민주가 집권하고, 국힘이 패해서 혹은 그 반대라서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한다면 조용히 TV를 끄고, 유튜브를 잘라내시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번 더 나쁜 새끼 찾기 컨테스트 경쟁장의 가장 큰 희생자가 녹색진보당이라 생각한다. 지지를 얻지 못해 원외 정당의 신세로 전락했으니까. 진영 정치에 경도된 대중 일반에게 계급정치가 무용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되지도 않는 뜬구름 잡는 몽상가들에게 희망이 없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불평등 사회에서 계급 정치 만큼 당신을 정확히 대변할 제도가 있을까. 물론 계급 정치도 나쁜 새끼 찾기 컨테스트 만큼 시끄럽겠지만, 둘은 다르다. 전자는 이해관계를 놓고 싸우다 결국에는 절충점을 찾기 마련이지만, 나쁜 새끼 컨테스트의 끝은 어느 하나의 심장에 칼이 꼿혀 죽어나가지 전에는 끝이 나지 않을테니까.
저 유명한 스토아리텔레스 형님은 극단을 피하고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라고 덕 (virtue)이란 말씀하셨다. 우리 동양에서도 극단의 대결을 피하고 중용의 도를 지키라 하지 않았나. 스토아리텔레스 형님의 덕이 개인적 차원이라면, 우리 동양에서는 보다 사회적 맥락에서 중용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좀 차이가 있겠지만, 이 두 가지가 합해지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의 균형, 각기 다른 계급적 이해 관계 속에 조화가 이루어 질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건 어떤 새끼가 더 나쁜 지 가려내기 위한 극단의 수사가 난무하지 않는 사회를 사는 것, 그리고 당신 역시 나와 다른 입장의 또는 다른 이해관계의 사람과 중간에서 만나 어떻게 같이 살지 고민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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