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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복싱 라이벌 - The Fabulous Four





로베르토 듀란, 슈거 레이 레너드, 토머스 헌즈 그리고 마빈 해글러. 80년대 복싱의 승부는 이들 넷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공작의 꼬리처럼 화려하게 펼쳐졌다. 돌주먹이라 불리던 파나마의 복싱영웅 로베르토 듀란. 듀란은 1980년 레너드와의 WBC 웰터급 타이틀전에서 경기 내내 완벽하게 밀어붙인 끝에 심판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라이벌 구도의 서막을 알린다. 4대 천왕의 상대전적에서는 이후 패전을 거듭하지만 그가 나머지 셋보다 나이가 많았고, 전성기를 일찍 보냈다는 점을 감안해 줘야 한다. 듀란은 33년이란 긴 프로선수 생활 동안 라이트, 주니어웰터, 웰터, 라이트미들급까지 4체급을 석권하였고, 2002년 50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119전 103승 70KO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슈거레이 레너드. 그의 본명은 레이 찰스 레너드이다. 레너드의 빠른 발과 화려한 테크닉을 보고 사람들은 전설의 복서 슈거 레이 로빈슨을 연상했고, 이후 그의 이름엔 슈거(sugar)라는 애칭이 따라 붙는다. 상대에 따라 아웃복서이자 인파이터로 변신했고, 유연한 몸놀림과 번개 같은 몰아치기 등 링 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링 위의 예술가였다. 레너드는 4대천왕의 대결에서도 유일하게 나머지 셋을 다 이겼으며, 특히 81년 말 헌즈와 벌인 주니어 미들급 방어전은 역사상 최초로 대전료 1천만 달러를 넘어선 경기였다. 79년 웰터급을 시작으로 슈퍼미들급까지 5체급을 석권했고 통산전적 36승 1무 3패 25KO 기록한 레너드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스피드와 노련한 경기운영 테크닉으로 위대한 복서의 반열에 올랐다. 하나 더, 그는 76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라는 것.


토마스 헌즈, 디트로이트의 저격수(Hitman), 그래서 모터 시티의 코브라라 불렸던 사나이이다. 큰 키에서 내리찍는 스트레이트를 주무기로 결코 물러서지 않는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했다. 세기의 관심을 모았던 레너드와의 첫 경기에선 패했지만 두 번째 경기에선 두 차례의 다운을 빼앗는 등 누가 봐도 헌즈가 승리한 경기, 그러나 결과는 무승부, 레너드에겐 비겨서는 안되는 경기였다. 헌즈는 77년 데뷔한 이래 총 67전을 펼쳐 61승(48KO) 1무 5패를 기록했고, 6체급을 석권했다. 2004년 이후 링에 복귀, 2006년까지 오랜 현역 선수시절을 보냈다.


경이적인 챔피언 마빈 해글러는 최강의 펀치와 스태미너, 거기에 뛰어난 맷집까지 갖춘 강인한 선수였다. 원래 왼손잡이 복서들은 경기가 재미없다는 이유로 라스베가스 무대에 올라가지 못했는데 그런 인식을 바꾼 것도 헤글러라고 한다. 특히 토마스 헌즈와의 대결은 명승부로 기록되고 있는데, 강자들끼리의 대결에서 탐색전을 갖는 것과는 달리 탄탄한 맷집을 바탕으로 1회전부터 탱크처럼 밀어붙인 결과 헌즈는 3회를 넘기지 못하고 KO패를 당하게 된다. 이 경기를 지켜본 레너드가 "자신은 해글러의 상대가 아니다!" 라는 말을 남기며 은퇴를 선언한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이후 4년 뒤 복귀한 레너드의 치고 빠지는 작전에 말려 싱거운 판정패를 당한 해글러는 11년 무패행진에 종지부를 찍고 미련 없이 은퇴의 길을 선택한다. 두란, 레너드, 헌즈가 각각 라이트급, 웰터급에서 중량을 늘려간 반면, 해글러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들급만을 고수했다.

네 선수 모두 위대한 복서란 칭호가 어색하지 않다. 모두 강자와의 대결을 피하지 않았고, 화끈한 경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위대함의 반열에 스스로 올라섰다. 누가 더 셀까라는 복싱 팬들의 원초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1980년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에 올랐던 복싱, 그 인기는 피하지 않고 맞붙는 이들 라이벌의 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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