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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에 빠진 올림픽 결산

올림픽이 끝났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행사가 끝이 나면 전문가 집단의 결산 평가가 난무한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얘기를 했지만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눈에 띈 KBS 정재용 스포츠 국장의 인터뷰를 살펴본다.




Q) 첫 번째, 목표 달성에 대한 질문: 이번 올림픽의 성적은 과거와 비교해 초라했다. 금메달 6개, 그 가운데 4개는 양궁에서 몰빵되어 있고, 하나는 체조, 나머지 하나는 펜싱에서 나왔다.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A) 국민들의 올림픽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달라져서 괜찮다. 국민들이 예전에는 메달에 울고불고 했는데, 이제는 수준이 높아져 금메달 몇 개와 종합순위 보다 메달을 못 따더라도 선수들이 선사하는 감동에 관심 있다.

나는 구분을 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적 목표란 대한체육회가 세운 목표이다. 국민들의 눈높이와 별개로 약 4000억 원의 재원을 국가로 부터 지원 받아 그 가운데 절반 가량을 올림픽 출전 선수에 쏟아붓는 대한체육회는 계획했던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 많은 돈을 올림픽 출전선수들에게, 더 확장하면 지방체육회 수준에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 수준의 선수들의 인건비와 훈련비로 국가재원을 동원해 지원하고 있는데, 3개 종목에서만 금메달이 나왔다면, 지금 엘리트 스포츠에 쏟아붓는 국민세금이 과연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효율적인지, 맞는지 틀린지 검토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국민적 관점 변화와 별개로 대한체육회의 목표 달성 실패는 구분해서 다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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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부분의 전문가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국민들의 눈높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쌍팔년도 당시부터 지금까지 메달 개수의 목표를 세우는 건 국가였지, 스포츠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스포츠가 선사하는 승부와 경쟁과 하이 퍼포먼스의 경이와 최선을 다한 분투에 감동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부터인가 메달 개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위와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메달 개수는 국가와 국가로부터 돈을 받아 선수촌을 운영하는 대한체육회의 목표였지, 국가대표의 경기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관심이 애시당초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민의 스포츠를 바라보는 눈높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국민들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왜 눈높이가 높아졌다, 스포츠를 바라보는 관점이 높아졌다고 얘기하는가.

착시현상 때문이다. 착시현상은 소위 스포츠계의 개혁과 진보를 자처했던 사람들의 눈에 덧씌워진 현상이다. 그리고 이런 착시에 시달리는 이유는 자신들의 사회활동과 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반응을 연결시키면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스포츠계의 개혁 진보는 빙상 대표팀 성폭력, 배구계 학교 폭력으로 대표되고, 스포츠계에 만연한 폭력을 비롯한 비위들에 대해 비판해 왔는데, 자신들의 활동에 지나치게 자아도취된 나머지 스포츠 개혁 운동이 사람들의 올림픽을 바라보는 관점마저 바꿔 놓았다고 이야기한다. 즉, 자신들의 이 비판적 사회활동이 스포츠를 메달로만 바라보던 무지몽매한 국민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사했으며, 그 덕분에 스포츠를 바라보는 관점에 큰 진보가 있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올림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승리지상주의 국가주의 스포츠와는 관련성이 없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스포츠가 선사하는 승부와 경쟁과 하이 퍼포먼스의 경이와 최선을 다한 분투에 감동한다. 스포츠계의 폭력도 별개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금메달이란 결과 때문에 그 폭력을 그 누구도 용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 명제에 인과관계가 없다. 그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예전에 허접해서 교육받아야 하는 우민이란 전제는 주로 먹물들의 가정이지 사람들은 예전부터 세련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개혁가들의 자신들의 관심사를 아무거에나 연결시키는 자기 과장, 나르시시즘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이 나르시시즘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올림픽이 반복될 때마다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국민은 더 이상 메달 지상주의에 관심이 없다라는 같은 진단을 반복할 것이다. 뭔가 사람들을 일깨웠다는 자부심, 과장된 자기평가가 변함없는 사람들을 갑자기 달라 보이게 만드는 착시현상, 자뻑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Q) 황선우, 우상혁 기초종목에서의 성취에 대해 국민들이 고무되었다. 메달 획득을 위해 어떻게 시스템을 바꿔야 하나. A) 전통적으로 약세를 보이던 육상과 수영에서 선전을 펼치고 좋은 성적이 나왔으니 메달을 못 따도 사람들은 열광한다.


당연한 거다. 쌍팔년도에도 그랬고, 박정희 때도 그랬을 것이고, 일제강점기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바뀌었다는 이 생각이 왜 뇌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계속 반복된 말로 튀어나온다. 그래서 "성적을 내려면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란 질문에 어떻게 답하고 있는가?

학생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투명한 대학진학과 은퇴 후 진로를 열어주고, 동시에 폭력이나 강압이 없는 훈련 문화를 제공하는 선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재용 스포츠 국장 인터뷰

메달권에 어떻게 진입하냐는 질문에 대한 첫 답이 "학생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고"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경기력이 향상되나? 투명한 대학 진학이나 은퇴 후 진로 보장되면 높이 뛰기 선수의 점프가 높아지고, 수영선수의 기록이 단축되나?

"폭력이나 강압이 없는 훈련 문화를 제공하는 선진 시스템을 구축"은 민주국가에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 전제이지 이게 어떻게 경기력 향상과 관련성이 있다고 할 수 있나? . 기초 종목의 성적을 내기 위해선 어떻게 선수 풀을 넓힐 것인지, 그 가운데 유망주를 어떻게 선별할 것인지, 그렇게 선발된 유망주들은 어떤 훈련 시스템에서 육성할 것인지, 또 그들의 기록 향상을 위해 어떻게 최첨단의 훈련 방법을 제공하고 스포츠과학을 접목할 것인지, 이 과정에 관여할 제도와 기관에 문제는 없는지, 이런 얘기가 돌아올 것을 기대하는 게 상식일 것 같은데, 답은 학습권 보장과 폭력 근절이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위 진술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얘기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경기력 향상과 관련된 부분과 학습권 보장이나 투명진학과 같은 학교 체육 정상화 폭력 근절과 같은 민주사회의 기본질서와 경기력 향상을 모두 뭉뚱그려 선진 시스템으로 퉁쳐 버려선 곤란하다.

Q) 시스템은 어떻게 바꾸나? A) 스파르타식 소수정예 집중훈련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주의 엘리트 스포츠 육성 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 이런 옛날 시스템에 국민들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반복되지만 이런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혁론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만 있고, 선수 개인은 없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여전히 국가가 몇몇 애들을 잡아다가 강제로 빡세게 훈련시켜 국위선양을 위해 국제대회에 출전시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래 그림을 보자.

전문가 집단이 달라졌다고 내세우는 내용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국가는 여전히 국가주의 스포츠관과 승리지상주의에 사로잡혀 메달 개수 운운하지만 선수들은 저렇게 즐겁고 자유롭다는 거다. 그리고 바뀐 세상이란 국가의 명예를 위해 메달을 못 딴 선수가 태극기의 무게가 무거워 미안하고 서러운 눈물을 흘리던 세상은 갔다는 것이다.

그렇다. 선수들은 더 이상 메달 때문에 서럽게 눈물 흘리지 않는다. 근데 그건 국가와 연관성을 지어서 설명할 문제가 아니다. 내가 맨날 하는 얘기지만 엘리트 스포츠 선수는 프로페셔널이고, 직업인이며, 개인사업자이다. 개인사업자의 입장에선 세계인이 주시하는 올림픽이란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이란 상품을 선보인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흡족하고, 즐거우며, 성공적인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메달을 따면 더 좋지만 충분한 자기 PR의 시간이었기 때문에 뭐 별로 슬플 이유가 없다. 고생한 개인이 국가와는 별개로 즐거움을 만끽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이들의 유쾌함을 왜 꼭 과거 유신시대, 쌍팔년도의 국가주의와 연결짓는가. 대통령이 그렇게하라고 지령이라도 내렸나? 아닐것이다. 요즘 정부는 올림픽에서 몇 개의 금메달을 따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국가가 아닌 개인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시스템을 논해야 한다. 엘리트 스포츠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보름이란 올림픽 기간 동안 국민들을 결집시키고, 국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면, 이 분야의 직업군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어떤 시스템과 판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질문에 도돌이표 처럼, 학습권을 보장하고, 투명하게 대학에 입학하고, 폭력이나 강압이 없는 훈련 문화를 제공해야 한다고 답하는 건 동문서답이다. 이런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인과관계있는 답을 내 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모든 문제가 스포츠계 비위 근절이라는 혁신위의 레퍼토리로 환원될 순 없다. 예전에도 얘기 했지만 혁신위는 학교체육 정상화에 대해 주로 얘기했을 뿐 학교 담장 넘어 전체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 개혁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이 얘기를 물어봐도 학습권을 보장해야 하고, 저 얘기를 물어봐도 체육특기자제도 때문이고, 또 다른 얘기를 물어봐도 폭력을 근절하고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식으로 답하면서 이게 다 승리지상주의 국가주의 때문이라 답하는 무지몽매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르시시즘에 빠지면 거울 속만 보이는 것처럼 한국 스포츠 개혁의 문제가 이번 포스트 올림픽 전망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자의식 과잉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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