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월드컵 중계! 국뽕과 조롱사이



2018 러시아 월드컵, 벨기에와 일본의 16강전, 벨기에가 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역전 골을 성공하자 KBS 한준희 해설 위원이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일본의 선제골에 시무룩했던 게 오버랩 되어 일본 탈락에 대한 환호로 느껴졌다. 경기 후 이런저런 비판과 지지 그리고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본인이 직접 방송을 통해 "원래 남의 불행을 즐기면 안 되는 법인데 월드컵에서 라이벌 팀의 불행은 즐겨도 된다. 월드컵이 그러라고 있는 거다. 평상시 이성적인 사고를 내려놓고 승부 자체에 몰입해 원시적 감정을 드러내라고 월드컵이 있는 거다"라고 밝혔다.

여기저기서 국뽕 중계란 비판이 나왔다. 국뽕에 취한 나머지 남의 불행을 기뻐했다는 얘기다. “국뽕 = 국가 +히로뽕”이란 의미로 국가의 성취에 대한 과장되고 지나친 열풍을 풍자한 말이다. 사실 월드컵 축구는 국뽕의 향연이다. 국가 대항전에서 ‘우리’라는 국가주의적 감정을 결집시키는 원동력이고, 경기를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필수요소이다. 국뽕 없는 국가대표 축구 경기는 해물 빠진 짬뽕이다. 한준희 위원 말처럼 월드컵은 그러라고 있는 거다. 실컷 국뽕에 취했다 경기가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향유했던 국뽕과 이번 사안은 좀 달랐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온 국민이 축구에 몰입해 “대한민국”을 외치며 황홀한 한 달을 보냈다. 대표적인 국뽕에 취한 외침. 그러나 여기엔 그 어떤 상대에 대한 폄하나 조롱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스포츠에서 라이벌의 패배에 대한 환호는 국뽕이 아니라 ‘조롱’이다. 함께 경쟁한다는 건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 최선을 다한 상대에게 표할 수 있는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존중’뿐이다.

나는 그날 해설자의 “감사합니다”란 환호가 불편했다. 공중파는 다양한 사람이 모인 곳이다. 누군가는 일본이 패배를 염원하며 축구를 보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스포츠토토에 일본 ‘승’ 역배당에 돈을 걸고 보고, 또 누군가는 전력 상 약팀의 선전을 기대하며 봤을 것이다. 새벽에 잠이 깬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덤덤하게 축구를 봤다. 그냥 축구일 뿐인데 정치적 분노를 스포츠에까지 확장시켜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해설자의 “감사합니다”란 환호가 불편했던 이유는 내 뜻과 상관없이 어떤 무리 속에 뭉뚱그려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극소수에 불과할 “감사합니다”란 환호에 공감하고 열광할 무리 말이다. 편파중계는 마이크 권력을 잡은 자가 시청자를 한 무리 취급하는 처사이다. 이런저런 다양한 취향의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라면 무엇보다 그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혹자는 "축구는 축구일 뿐인데 뭘 그렇게 예민하냐." "쓸데없이 진지하지 말고 그 진지함 아꼈다가 정말 정색해야 할 때 정색하자"라고 얘기한다. 쓸데없는 것과 정색해야 할 것 규정하기. 또한 마이크 독점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이다. 비록 축구 중계일지라도 마이크 권력은 시청자가 경험할 세계를 선택하고, 배제하고, 강조할 힘을 갖는다. 그러니 누리는 권력만큼 책임도 요구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요즘은 공중파 3사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도 개성 강한 BJ들이 진행하는 월드컵 중계를 만날 수 있다. 치열한 경쟁 속 해설자들은 보다 자극적인 무기를 준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뀐 미디어 환경 속에서 공중파 해설의 경쟁력이 배타적 조롱이 되지 않길 바란다. 누군가에겐 속이 뻥 뚤려 만족감을 줄 수 있겠지만 축구를 축구로, 축구를 예술로 바라보는 팬이라면 이런 유의 조롱엔 불쾌감을 느낄 뿐이다.

스포티안 칼럼 (www.sportian.co.kr) 2018. 07.08

조회수 22회댓글 0개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