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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라는 말잔치


출처> 2018 FIFA World Cup Russia 홈페이지 © [SPORTIAN] 편집국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대한민국이 탈락했다. 패했던 스웨덴, 멕시코전 이후 감독과 선수에 대한 비난부터, 전술, 전략, 시스템, 협회, 유소년, K리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말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기적과 같던 독일 전 승리 이후 냉탕에 빠졌던 반응은 극적으로 온탕으로 옮겨갔다. 조별예선이 벌어진 단 세 경기 동안 우리 사회의 반응은 극과 극을 달렸다. 침묵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강박증 환자처럼, 말 보따리를 풀어놔야 직성이 풀렸다. 이유가 무엇일까. 미디어 학자 매클루언은 그게 다 ‘축구’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에게 있어 미디어란 라디오, TV, 인터넷, 신문만이 아니다. 메시지를 만드는 모든 것이 미디어다. 어떤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지에 따라 핫미디어와 쿨미디어로 나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야구는 ‘핫미디어’고, 축구는 ‘쿨미디어’다. 축구처럼 뜨겁고 열정적인 스포츠가 ‘쿨’이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경기의 온도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그렇단 얘기다. 먼저 핫미디어인 야구를 살펴보자. 4개의 베이스마다 붙어있는 심판은 매 순간 빠지지 않고 판정을 내린다. 필드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엔 스트라이크, 볼, 파울, 아웃 등으로 이름이 붙는다. 1루에 거의 동시에 도착한 선수와 공 중 누가 빨랐을까. 야구는 관중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경기가 만들어내는 모든 메시지는 빈틈없이 정의돼 전달된다(high-definition). 대신 보는 사람이 끼어들 팀이 없다(low-participation).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 친절하다 보니 쿨하지 못해 미안한 스포츠가 바로 야구이다. 반면 축구는 어떤가. 축구엔 설명 따윈 필요 없다. 처음 본 사람도 아군 적군의 식별이 명확하다. 볼이 네트를 때리면 ‘골!’이라 외치는 건 본능에 가깝다. 무려 20명의 선수가 방향을 잡고 정신없이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뒤엉키고, 부딪치고, 넘어지지만 축구는 모든 상황을 야구처럼 미주알고주알 정의하지 않는다(low-definition). 달랑 한 명인 심판이 모든 걸 결정한다. 그마저도 친절하지 못해 선수가 걸려 넘어져 나뒹굴어도 흐름만 이어지게 할 뿐, 자세한 설명도 없다.


축구에서 만들어지는 메시지는 구멍이 숭숭 뚫린 날것으로 청중에게 전달된다. 눈에 들어온 그 많은 순간들에 별다른 정의가 내려지지 않을 때, 보는 사람은 어떨까. 축구로부터 메시지를 전달받은 수용자들은 각각의 상황을 각자의 방식으로 재정의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축구는 이렇듯, 다 알 것 같은 상황에 아무런 설명이 없는, 그래서 그 빈 공간을 수용자가 스스로 창조한 무수한 말들로 채워 넣어야 하는 스포츠이다(high-participation). 각자의 눈에 들어온 정보를 알아서 재정의해야 한다니 쿨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물론 쿨과 핫의 특성이 영원히 불변하는 건 아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새롭게 선보인 VAR(Video Assistant Referees) 판독은 전통적인 축구의 메시지 전달 방식을 벗어나 있다. 축구의 전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쿨하지 못하게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따져 물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그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 축구에 감놔라 배놔라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댄 이유는 무엇이었나. 빈약한 정보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그래서 그 빈 공간을 보는 사람이 스스로 채워 넣어야 직성이 풀리게 하는 스포츠. 말 잔치를 주최한 건 다름 아닌 축구이다. 우리가 특별히 유별나서가 아니라 원래 '말 잔치'가 열려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스포츠가 축구이다. 결국 이게 다 ‘축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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