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와 야구협회 간 협정서, 무엇이 문제인가! : 선수 개인의 권리 위한 제도개선 시급
스물한 살 동철씨 이야기.
초등학교 때 야구를 시작한 이래 동철씨의 꿈은 줄곧 프로야구 선수였다. 프로무대에 설 모습을 꿈꾸며 매일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고등학교 3학년,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했지만, 지명되지 못했다. 재도전을 기약하며 체육특기생으로 진학한 대학, 그가 경험한 대학은 프로선수를 준비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학업과 운동의 병행, 비정기적인 경기 스케줄, 무엇보다 60여 명이 넘는 선수 스쿼드는 신입생에게 기회조차 허락하지않았다. 주전으로 뛰어야 기록이 남고, 경기에 나가야 스카우터의 눈에 띌 수 있을 것 아닌가. 졸업까지 4년, 병역마저 해결하지 못한 그에게 프로의 길은 아득하기만 했다. 결국, 대학을 중퇴한 동철씨는 경기도의 한 독립야구단을 찾았다. 한 해 동안 이 팀이 속한 독립리그에서 일주일에 두 번, 한 시즌 56경기의 경기를 소화했다. 출전 경험이 많아지면서 경기력이 향상되었고, 결국 한 프로구단의 스카우터로부터 입단에 대한 긍정적 답변을 얻었다. 이제 꿈에 그리던 프로무대가 손에 잡히는 듯했다.
‘협정서’ 유망주의 발목을 잡다!
프로야구단 입단 절차를 알아보던 동철씨는 뜻하지 않은 장벽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가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기준, 최소 4년 최대 6년 동안 프로야구 신인선수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대학을 중퇴했지만 원래 대학 졸업 예정 연도까지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없고, 군입대라도 하면 2년이 추가된다는 믿기 힘든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교 졸업, 드래프트 실패, 특기생 입학, 대학 중퇴, 독립야구단 입단, 독립리그 참여까지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외길을 걸어왔는데, 실력 말고 더 필요한 게 있을까. 갑자기 마주한 무거운 현실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2018 프로야구 규약 제119조 3항에 따르면 “재학 중이던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를 중퇴한 선수는 1차 지명에서 제외된다.” 즉 중퇴선수는 1차 지명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연고권에 상관없이 10라운드까지 진행되는 2차 지명은 어떨까. 이에 대해 ‘프로야구 규약’에는 특별히 명시된 바 없다. 대신 중퇴선수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KBO가 체결한 ‘협정서’의 적용 대상이다. 제3조 1항의 [중퇴선수와의 계약 조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교 또는 대학 선수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등록된 선수가 재적 학교를 중퇴한 경우 중퇴 사유와 상관없이 해당 선수의 고교 또는 대학 졸업 연도에 지명을 거친 후 프로구단과 입단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예상 졸업 연도 이전에 군 입대 시 2년 연장)
협정서에 따라 대학에 특기생으로 입학한 선수들은 입학 연도를 기준으로 졸업 때까지 신인선수 드래프트에 지원할 수 없다. 여기에 재학 기간 중 군대에 가면 2년이 추가된다.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4년, 군복무를 시작한 순간 2년 총 6년의 자격정지를 당하는 셈이다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KBO와 협회 간의 협정서
KBO와 야구협회가 체결한 협정서는 학교가 선수공급을 독점하고, 학생선수의 거취를 통제할 권한을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협약은 학생 야구 선수의 무분별한 프로 차출로 발생할 수 있는 학원스포츠의 황폐화를 막겠다는 의지에서 탄생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 학교와 인연을 맺었던 동철씨와 같은 처지의 선수들에게 협정서는 노예 계약서처럼 들러붙는다. 학교에 발을 들인 선수는 중퇴하더라도, 군대에 가더라도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없으니, 야구를 그만두든지, 학교의 틀 안에 머물든지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한 번의 판단 실수로 최대 6년까지 자격정지를 감수해야 한다. 한국의 프로야구에서 뛰길 원하는 중퇴선수는 협정서가 둘러친 이 쇠우리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개인의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하는 협정서!
협정서는 개인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존중하는 오늘날의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한다. 의무교육을 마친 개인에게 대학은 선택의 영역이다. 대학을 포기하든, 중퇴하든, 졸업하든 프로야구 무대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직업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협정서는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해가며 프로의 문을 두드리는 수많은 도전자의 앞을 가로막는다. 조항을 만든 사람들은 대학리그의 보호를 고려했을지 모르지만, 프로야구에 도전하는 개인의 권리는 존중하지 않았다.
선수 육성을 위한 다양한 무대를 통해 프로야구 발전 도모해야! 과거, 엘리트 선수를 육성할 수 있는 변변한 사회적 자원이 없던 시절, 학교는 그 유일한 통로였다. 학원스포츠가 무너지면 제대로 된 선수 육성이 불가능했고, 프로 리그 또한 우수선수를 수급받기 어려웠다. 그 시대엔 협회와 KBO가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 맺은 협정서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엘리트 선수 육성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동력이 갖추어졌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협정서의 취지는 정부시책에도 반한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30 체육비전’에 따르면 스포츠클럽을 기반으로 전문선수를 육성하는 시스템으로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구상하는 풀뿌리스포츠의 기반은 엘리트선수의 육성을 과거처럼 학교에 제한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이를 반영하듯 주변에 엘리트선수를 육성할 수 있는 수많은 양질의 사설 야구클럽들도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 재도전을 꿈꾸는 선수들이 몰리며 활기를 띠기 시작한 독립리그도 있다. 이미 한국독립야구연맹드림리그(KIBA)에 4팀, 경기도챌리지리그(GCBL)에 3팀이 열띤 경쟁을 하고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 협정서를 유지하는 것은 학원스포츠 당사자들의 이해를 보존하는 것 말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더욱이 정유라 사태 이후 반드시 공부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대학이 과연 정상적인 방식으로 프로스포츠를 위한 재도전의 무대가 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운 일 아닌가.
수많은 동철씨를 위해 제도 개선 절실!
동철씨의 사례를 아직 협정서를 숙지하지 못한 몇몇에 국한된 얘기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잘 모르는 일부가 학교를 중퇴하고 불이익을 당한다고. 그러나 동철씨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수많은 합리적인 개인들이 프로야구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더는 소수의 얘기로 치부하기 어렵고, 이들의 선택을 억압적 방식으로 통제하는 게 능사가 아닌 이유이다.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군대도 갈 수 없고, 예정된 재학 기간에는 드래프트에도 참여할 수 없는 협정서의 조항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국가의 정책 기조에도 반한다. 학교든, 독립야구든, 클럽이든 그들이 원하는 무대에서 마음 놓고 야구하고, 프로에 재도전 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누구든 프로야구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직업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대에 맞는 제도의 변화가 절실하다.
스포티안 칼럼(www.sportian.co.kr) 2018/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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