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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공간으로서 웸블리 스타디움

영국에서 어떤 가수가 특급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웸블리를 채울 수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웸블리를 가득 채우고 콘서트를 열었던 퀸, 콜드플레이, 오아시스, 리아나 등은 그것을 통해 자타가 공인하는 특급 가수가 되었다고.

85년? Live Aid 당시

웸블리는 흔히 축구의 성지라고 하는데, 축구 만의 성지는 아니고 럭비의 성지도 웸블리다. 예루살렘이 기독교의 성지이자, 이슬람의 성지인 것 처럼. 웸블리에 '성지'라는 장소성이 부여된 이유가 뭘까. 어느 날 갑자기 축구의 신이 그곳에서 태어나 성지로 선포한 것은 아닐 것이고. 추축컨데, 브리티쉬 홈 챔피언십을 비롯한 FA컵 결승과 같은 구름떼 관중이 모여든, 이 곳에 오랫동안 누적된 기억이 '성지'라는 장소성을 부여했을 것이다. 그래서 옛날 자료를 함 찾아 봤는데, '옛날 옛적 웸블리'를 구글에 치면 이런 사진들이 나온다.

1936년 스코틀랜드 vs 잉글래드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경기 후 웸블리를 나와 집에 가는 사람들
1928년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웸블리
1932년 웸블리

The Graf Zeppelin hovers ominously low over the Wembley terraces, 1930


오래된 웸블리의 사진 속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지금 유럽에서 누캄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뉴 웸블리는 9만 명을 수용한다고 하는데 개인 좌석제로 운영되는 지금과는 달리 옛날에는 계단식 경기장이었기 때문에 15만도 들어가고 18만도 들어갔다고 한다. 여길 채운 제일 대표적 경기가 브리티쉬 홈 챔피언십인데, 19세기 영국에서 축구가 만들어지고, 1883년에 시작된 최초의 국제 축구대회다. 국제대회라고 하면 막 독일이나 프랑스 이런 애들 참가 했을 거 같은데 전혀 아니고. 여기에 참가 했던 팀은, 잉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다. 이게 그 당시의 인터네셔널. 그러니까 지금 UK를 구성하는 멤버들이 서로 피터지게 싸웠었고, 이 때 웸블리 처음으로 구름 관중이 모이면서 축구가 비로소 크리켓을 뛰어 넘어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가 되었다고 한다. 흔히 생각하기를 영국은 워낙 클럽 축구가 인기가 있으니까, 대표팀 경기에는 별 관심이 없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다. 영국에서 조차 축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계기는 민족 간의 피터지는 경쟁이었고, 여기에 가장 핵심적인 라이벌리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 벌어진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아래는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이 스코틀랜드에서 벌어졌을 때 상황이다.

1908년 글래스고우 햄든파크 스코틀랜드 vs 잉글랜드.

13만 5천명이 모였다는 1954년 햄든 파크

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영국은 월드컵에도 출전하지 않았는데, 이 사람들한테는 UK 멤버 끼리의 경쟁이 인터네셔널이었고, 거기에서의 승리가 곧 세계 최고였다. 축구가 융성하고 삶에 가장 친숙한 일부가 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으로 떠 오르는 장소로서 웸블리. 오늘날 웸블리를 축구의 성지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와 같은 역사성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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