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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논문 1. 규정 언어에 내재된 권력의 통치성 : ‘출전 제한’과 ‘스폰서 제한’의 결합 구조 분석

     

대한배드민턴협회의 ‘국가대표 선발규정’과 ‘국가대표 운영지침’은 각각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자격과 활동 조건을 규정하는 독립된 문서이다. 그러나 두 문서는 실제로는 긴밀히 연계되어 선수의 자율성과 경제적 권리를 이중적으로 제한하는 통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이 두 문서는 실질적으로는 상호 의존하며 출전권과 경제권을 협회의 권력 구조에 종속시키는 복합적 통제 장치를 구성한다.

구체적으로 첫째, ‘국가대표 선발규정’은 선수의 자격과 경력을 규정하여 국제대회 출전 자체를 협회의 권한 안에 두도록 설계되어 있다. 둘째, ‘국가대표 운영지침’은 출전이 허용된 선수들이 따를 경제적·행정적 조건을 규정함으로써 선수의 자율성을 추가로 제약한다. 즉, 출전권과 경제권이 동시에 협회에 종속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동 구조는 구체적으로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10조 제7항’과 ‘국가대표 운영지침 제9조’에 명확히 드러난다.

먼저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10조 제7항은 국가대표와 비국가대표를 구분하여 국제대회(BWF 승인 투어 포함) 출전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나호 제3목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명시한다.

     

소속팀에서 소속팀 선수의 세계배드민턴연맹 승인 국제대회 참가 승인 요청할 경우 국가대표 은퇴 선수 중 대한민국 배드민턴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선수에 한해 세계배드민턴연맹 승인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공로에 대한 기준은 국가대표 활동기간을 햇수로 5년 이상인 선수를 대상으로 하며, 그 연령은 여자 만 27세, 남자 만 28세 이상으로 한다. 단 국가대표팀의 요청이 있을 경우 공로 및 연령기준을 충족하지 목하여도 대회 참가를 허용할 수 있다.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10조 제7항 나호 제3목>

     

이 규정은 표면적으로는 비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참가를 허용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격한 조건을 부과해 비국가대표 신분으로의 출전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여기서 말하는 국제대회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국가대항전이 아니라, 선수 개인이 세계랭킹 기준을 충족하면 참가할 수 있는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승인 투어대회를 의미한다. 따라서 원래는 개인 랭킹에 따라 보장되어야 할 투어대회 출전권조차 협회의 국가대표 신분에 종속되도록 설계된 셈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 제한이 단순한 행정 지침이 아니라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투어대회 출전이라는 개인 권리마저 ‘선발규정’이라는 제도 장치에 묶임으로써,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않은 선수는 사실상 국제 경쟁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선수들은 협회의 국가대표 체제에 필연적으로 종속되고, 세계랭킹 1위인 안세영 선수조차 국가대표 경력 5년 이상과 여자 만 27세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출전이 제한되는 구조적 족쇄에 갇히게 된다.

이처럼 투어대회 출전조차 국가대표 신분에 종속되는 구조는 단순한 행정 규정을 넘어 권력이 선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담론적 장치로 기능한다. Althusser(1971)가 말한 ‘호명(interpellation)’ 개념을 적용하면, 국가대표 선발규정은 선수를 ‘국가대표’라는 정체성으로 호출하고, 선수는 그 정체성을 수용함으로써만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즉, 국제 경쟁의 필수 조건이 국가대표 신분으로 설정됨으로써 선수는 필연적으로 협회의 권력 구조에 포섭된다.

한편, 선수가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국가대표 운영지침 제9조’가 적용되어 추가적인 경제적 제약이 발생한다.

     

국가대표선수는 국가대표선수 활동기간 중 본 협회의 운영방침에 반하는 광고 및 대외왈동을 해서는 안되며, 대표팀 초상을 이용하여 각종 이벤트, 방송 및 광고 출연, 출판 등을 할 때에는 본 협회의 사전 승인을 득하여야 한다. <국가대표운영지침 제9조 제2항
세계배드민턴연맹에서 정한 홍보 규정 내에서 개인 후원계약을 허용할 수 있으며, 그 위치는 규정 내 위치 중 우측 카라(넥)로 지정하며, 수량은 1개로 지정한다. 단 배드민턴 용품사 및 본 협회 후원사와 동종업종에 대한 개인 후원 계약은 제한되며…” <국가대표 운영지침 제9조 제6항>

     

이 조항들은 국가대표라는 이름 아래 선수의 개인적 경제 권리, 즉 광고 계약, 후원 계약, 장비 사용 등 경제 활동 전반을 협회가 엄격히 관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협회는 ‘공익’, ‘형평성’, ‘국가대표 시스템의 일관성’ 같은 집단주의적 담론을 사용하여 선수의 경제적 자유와 시장 참여를 억압한다. 예컨대, 협회가 ‘공익’과 ‘형평성’을 내세우며 특정 기업과 후원 계약 체결을 금지하는 것은 선수의 시장 참여 권리를 제한하면서도, 이러한 제약이 마치 합리적이고 공정한 조치인 양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 결과 선수들은 “투어대회에 출전하려면 국가대표가 되어야 하고, 국가대표가 되면 권리를 잃는다”는 이중 구조적 역설 속에 처한다. 선수들은 국제대회 출전권 획득과 경제적 권리 유지 사이에서 실질적인 선택권을 박탈당하게 된다.

이는 CDA에서 언급되는 이중 구속(double bind)의 언어적 메커니즘으로 볼 수 있다. 이중 구속은 Gregory Bateson이 제안한 개념으로, 두 개의 상충되는 메시지가 동시에 전달되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상황을 가리킨다(Bateson, 1972). 대한배드민턴협회의 국가대표 규정은 ‘국가대표가 되어야만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는 요구와 동시에 ‘국가대표가 되면 개인의 경제적 권리 및 자율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상반된 제약을 동시에 부과함으로써 선수들을 이중 구속 상황에 놓이게 만든다. 이는 특정 권력관계나 지배구조가 마치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자연화 전략(naturalization strategy)의 한 형태로 기능하며, 궁극적으로 선수들의 선택 가능성을 제한하고 협회의 권력 구조를 정당화하는 효과를 갖는다(Fairclough, 2003, pp. 12~13).

결론적으로 ‘국가대표 선발규정’과 ‘국가대표 운영지침’은 단순한 행정적 규범의 나열이 아니다. 이 규정들은 출전 자격과 경제적 권리를 동시에 통제하고 제한하는 방식을 통해 선수의 자율성을 체계적으로 해체하는 권력의 언어적 장치, 즉 통치 기술(governmentality)로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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