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논문 2: 담론적 실천 차원의 분석: 발화, 해석, 수용, 충돌의 장으로서의 담론 공간
- 한승백

- 9월 20일
- 6분 분량
1) 저항의 담론: 안세영의 발화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직후 안세영의 발언은 단순한 불만 표현을 넘어 국가대표 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저항 담론으로 기능하였다.
대표팀의 안일한 대처에 실망했습니다.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대표팀이랑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대표팀을 떠난다고 해서 올림픽에 못 나가는 것은 선수에게 너무 야박하지 않나요?” <파리올림픽 안세영 기자회견, 2024.08.05.>
이 발언은 안세영 선수가 국가대표 체계와의 관계 단절 의사를 내비치면서 동시에 제도 운용의 윤리적 정당성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야박하지 않나요”라는 표현은 단순히 정서적 불만 표출이 아니라, 협회가 선수의 올림픽 출전 기회를 제도로써 부당하게 통제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어진 인터뷰에서는 안세영의 저항 의도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저는 배드민턴 발전과 제 기록을 위해 계속해나가고 싶지만, (대한배드민턴)협회에서 어떻게 해주실지 모르겠다. 저는 배드민턴만 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이든 다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파리 올림픽 안세영 기자회견, 2024.08.05.>
여기서 “협회에서 어떻게 해주실지 모르겠다”는 발언은 협회의 제도 운영 방식에 대한 직접적인 의문이다. 이는 특히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10조 제7항 나호 제3목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소속팀에서 소속팀 선수의 세계배드민턴연맹 승인 국제대회 참가를 요청할 경우, 국가대표 은퇴 선수 중 대한민국 배드민턴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선수에 한해 참가를 허용할 수 있다.” 이 규정은 표면적으로 비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참가를 허용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협회가 자의적으로 설정한 ‘공로’라는 기준을 통해 출전 자격을 선별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즉, 국제대회 출전권은 선수 개인의 전문성이나 세계랭킹, 시장적 가치보다는 협회의 판단에 따른 ‘기여도’라는 주관적 기준에 좌우된다. 안세영의 발언은 바로 이러한 협회의 재량권의 자의성과 불투명한 통제 방식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진 질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협회는 모든 것을 다 막고, 그러면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한다. <파리 올림픽 안세영 기자회견, 2024.08.05.>
안세영의 이 발화는 앞 절에서 제시했던 규정의 구조적 이중 구속(double bind)을 선수 개인이 실제로 경험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는 글로벌 프로 선수로서의 자율적 활동과 올림픽 참가라는 두 가지 요구가 현실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음을 언급하면서, 규정의 구조적 제약을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 속에서 담론적으로 문제화한다.
안세영은 금메달 획득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에 이어, 며칠 후 자신의 SNS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하였다(서형우, 2024.08.16.). 그는 “제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불합리하지만 관습적으로 해오던 것들을 조금 더 유연하게 바꿔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는 발언을 통해 개인적 불만을 넘어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였다. 특히 그는 부상 관리에 대한 제도적 지원 부족과 현실적 한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이는 단순한 비판과 대립을 넘어 협회와의 합리적이고 진솔한 소통을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협회와 시시비비를 가리는 공방전이 아닌 제가 겪은 일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기를 기대한다”며 제도 개선을 위한 소통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이는 CDA에서 말하는 저항 담론이 단지 제도 비판에 머무르지 않고, 내부의 협의와 대화를 통해 실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전략적 성격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Fairclough, 2003).
지금까지 살펴본 안세영의 발화는 CDA 관점에서 ‘정당성에 대한 저항 담론(counter-legitimation discourse)’의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올림픽 금메달 직후라는 상징적 시점에서 나온 그의 발언은, 단순한 개인적 불만을 넘어 제도의 구조적 불합리와 권력 전환을 촉구하는 전략적 개입으로 기능했다.
2) 지배 담론의 응답: 협회 · 체육계의 담론적 재구성
안세영 선수의 문제 제기가 공적 담론 공간에서 확산되자, 협회는 즉각 반박 입장을 내고 체육계 인사와 언론은 이를 협회 관점에서 재구성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대응 담론이 선수의 권리 주장을 어떻게 규정하고 재구성하는지, 그리고 그 담론적 효과가 무엇인지 분석한다.
먼저, 안세영의 기자회견 직후 협회가 발표한 공식 입장문은 대부분의 내용을 부상 관리와 출전 강요 의혹에 대한 상세한 해명에 할애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표현이 이를 잘 보여준다(배준용, 2024.08.07.).
우리 협회에서는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선수의 대회 참가 여부 의사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국제대회에 참가시킨 대회는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세계배드민턴연맹에서는 선수의 부상에 적절한 진단서를 제출하면 벌금 및 제재를 면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벌금 규정 때문에 부상 입은 선수를 무리하게 국제대회 출전시킨 사례는 없었으며, 안세영 선수 역시 항저우 아시아경기대회 이후 덴마크, 프랑스오픈 불참 과정에서 구비서류를 제출하여 벌금과 제재를 받지 않았습니다. <안세영선수 인터뷰 및 관련 기사에 대한 협회의 입장 표명>
이러한 입장은 협회를 ‘선수 보호의 책임 있는 주체’로 정당화하며, 안세영의 비판을 ‘사실과 다른 주장’ 또는 ‘개인적 오해’로 축소한다. 담론적 초점은 협회의 치료 지원, 진단 절차, 트레이너 계약 경위, 협조 여부 등 ‘사실 해명’으로 집중되어 있으며, 안세영의 발화가 담고 있는 제도적 불합리성이나 출전 구조의 이중 구속 구조에 대한 응답은 마지막에야 등장한다. 특히 안세영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발언 “대표팀에서 나간다고 해서 올림픽을 못 뛰는 것은 선수에게 야박하지 않나”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現 협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서는 은퇴한 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허용 규정으로 ‘국가대표 활동기간을 햇수로 5년 이상인 선수를 대상으로 하며, 그 연령은 여자 만 27세, 남자 만 28세 이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관련 규정이 무시될 시 국가대표 선수들의 국가대표팀 이탈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있으며, 그럴 경우 협회의 국가대표 운영에 있어 상당한 고민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올림픽 참가 선수의 최종 결정 권한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 있으며, 우리 협회가 임의로 선수에게 참가 권한을 부여할 수 없습니다. <안세영선수 인터뷰 및 관련 기사에 대한 협회의 입장 표명>
이 같은 입장은 안세영이 제기한 출전권 통제 구조를 공공성·형평성·제도 안정성을 근거로 반박하며, 개인의 요구를 ‘규칙 위반’ 혹은 ‘제도 균열’로 이어질 수 있는 예외적 사례로 규정한다. 또한 협회는 IOC 헌장을 인용하여 올림픽 출전의 결정권을 자신들이 부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제도적 구조의 문제를 ‘협회의 권한 바깥’으로 밀어내는 담론적 응답을 구성한다.
이러한 협회의 담론 구성은 체육계 주요 인사들의 언론 발화를 통해 더욱 공고화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대한체육회장 이기흥의 발언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안세영의 기자회견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기존 국가대표 체계가 그동안 문제없이 작동해왔음을 강조하였다.
(배드민턴협회가 특정 협찬사의 운동화만 신도록 했는데, 안세영 선수가 발에 맞지 않아 어려워했다는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 배드민턴 연맹이 우리 이용대 선수나 많은 국제적인 선수들을 배출해냈는데 그런 컴플레인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상비군을 포함한 배드민턴 연맹 선수 300여 명 가운데 안세영 선수에게 더 밀착 지원을 한 것은 분명하다. 다른 선수들은 오히려 차별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기흥,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
이기흥의 발언은 안세영의 저항 발화를 역사적 선례가 없는 예외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로 규정하면서, 제도적 비판 자체를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기존 선수들의 ‘묵묵한 인내’를 전통으로 제시함으로써, 안세영의 발언을 도덕적으로 일탈적이고 예외적인 것으로 위치시킨다.
이러한 논리는 1996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해설위원인 방수현의 발언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방수현은 개인의 권리 주장보다는 도덕적 의무와 공동체적 책임을 강조하는 담론을 펼친다(이영미, 2024.08.09.).
대표팀 선수로 뛴다는 게 얼마나 어렵나. 안세영만 힘든 게 아니다. 모든 선수들이 그런 환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 나도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들어가 그 시간들을 다 겪었다. 대표팀을 누가 등 떠밀어서 들어간 게 아니지 않나.” <방수현, 일요신문 인터뷰>
이 발언은 안세영의 문제 제기를 ‘배은망덕’ 또는 ‘책임 회피’로 재구성하며, 개인의 권리 요구를 집단적도덕 질서에 종속시키는 담론 효과를 낳는다. 방수현은 개인의 성취조차 공동체의 기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강조하며 비판보다는 감사와 보은을 요구한다.
“금메달리스트로서의 인터뷰는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하는 것이다. 본인이 혼자 금메달을 일궈낸 건 아니다. 감독, 코치, 파트너 선수들이 함께했고, 배드민턴은 혼자만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대표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어린 유망주였던 안세영 선수가 자랄 수 있었고, 지금 안세영이 희생하면 또 다른 유망주가 자랄 수 있다. 이런 것이 대표팀 정신이고, 국가대표의 순환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방수현, 일요신문 인터뷰>
이러한 언술은 개인의 주체적 권리 요구를, 공동체 질서 속에서 되갚아야 할 은혜(채무), 순환되어야 할 희생, 보존되어야 할 전통으로 재구성하며, 국가대표 체계를 윤리적 의무의 장으로 자연화한다. 또한 방수현의 아래의 용품 스폰서 후원금 시스템의 발언은 이 지원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개인의 경제적 권리를 제한하는 정당화 논리로 기능한다.
배드민턴은 용품 스폰서의 후원금으로 주니어, 상비군, 국제대회 출전이 가능하고 협회 운영도 이뤄진다. 안세영도 그 지원을 받고 성장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수현, 일요신문 인터뷰>
이처럼 협회와 체육계 인사들의 발언은 안세영의 제기 내용을 공동체 윤리와 집단적 전통에 대한 도덕적 일탈로 재구성한다. ‘시스템 안에서 묵묵히 버텨온 다수 선수’의 존재를 통해 안세영을 도덕적으로 고립시키고 비정상적 개인적 요구로 규정한다. 결국 안세영의 문제 제기는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말했는가’라는 형식과 태도,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예의라는 정서적 규범으로 환원된다. 이는 곧 협회와 체육계 인사들의 담론 전략이 기존 국가대표 체계의 정당성을 자연화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이며, van Dijk(2006)이 말하는 ‘지배 질서의 상징적 재생산(symbolic reproduction of dominance)’의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3) 저항 담론의 사회적 수용: 의미 투쟁과 규정 개정의 담론적 경로
지배 담론의 전략적 재구성에도 불구하고, 안세영의 발화는 일방적으로 억압되지 않고 오히려 확산되어 사회적 논쟁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언론과 온라인 커뮤니티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안세영의 발화는 ‘이기적 요구’나 ‘시스템에 대한 배반’이 아닌 합리적 권리 주장으로 재해석되었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은 “협회 내부의 관료주의와 보신주의가 극에 달했다”며 대한배드민턴협회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특히 “국가대표 선발과 국제대회 출전을 위해 모든 선수가 27세까지 국가대표팀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규정은 선수 개인의 후원 계약을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김형호, 2024.08.09.).
이러한 비판은 결국 정부 차원의 공식 대응으로까지 이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안세영의 발언 이후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대한 특별 조사에 착수했고, 조사 결과 선수 후원 계약상 보너스 지급 조항 삭제, 임원의 인센티브 부당 수령, 특정 용품 사용 강제, 상하 위계적 생활규율(빨래, 청소 등)과 같은 다수의 비정상적 관행이 확인되었다(김지한, 2024.09.24.; 홍규빈, 2024.09.24.).
정부 조사 결과는 안세영의 발언이 일시적 감정 표출이나 단순한 개인적 불만이 아니라 구조적 모순과권력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음을 방증하였다. 특히 2024년 9월 24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민형배 의원은 안세영 선수의 부상 사진을 공개하며 “불합리한 규정 때문에 선수가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기성세대의 무책임한 처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력히 비판하였다. 이에 김택규 협회장은 거센 압박 끝에 결국 규정 개정을 약속하였다(김지한, 2024.09.24.; 홍규빈, 2024.09.24.).
이러한 사회적 공론화와 정부 차원의 개입 및 제도적 변화는 앞서 지배 담론이 내세웠던 ‘공동체 윤리’와 ‘보은의 의무’와 같은 도덕적 프레임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국가대표 시스템의 정당성에 균열을 초래했다. 결과적으로 선수 개인의 커리어 권리, 경제적 자유, 그리고 제도의 투명한 재구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주변적 외침이 아니라 정치적 논쟁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Fairclough(2003)가 강조한 ‘의미 투쟁(struggle over meaning)’의 전형적 사례로 이해될 수 있다. “Fairclough(2003)에 따르면, 담론의 의미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수용·재구성되는 과정에서 결정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안세영의 담론은 한편에서는 ‘이기적이고 공동체를 배반한 선수’라는 지배 담론의 프레임에 포섭되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억압적이고 불합리한 제도에 맞선 주체’로 재구성되며 공적 논쟁의 중심으로 부상하였다. 이를 통해 기존 국가대표 체계가 주장하는 공동체 윤리와 개인의 자율적 권리 사이의 첨예한 충돌이 발생했고, 이러한 긴장은 결국 제도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담론적 공간을 열어젖혔다.
결론적으로 안세영의 발화는 국가대표 시스템이 구축해온 상징 질서와 권력의 정당성에 균열을 일으키는 저항적 담론이었다. 이에 대한 협회와 체육계 원로의 대응은 이 균열을 봉합하기 위한 지배 담론의 전략적 재구성 시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 투쟁은 단지 표면적인 ‘말의 갈등’에 그친 것이 아니라, 기존 국가주의적 스포츠 통치 구조를 재검토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구조적 전환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안세영 사례는 이러한 담론적 투쟁이 어떻게 정치경제적 통치 구조와 맞물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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