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논문 3. 사회적 실천 차원의 분석: 국가주의·시장주의·공공성 담론의 충돌과 재구성
- 한승백

-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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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배드민턴협회의 국가대표 선발규정과 운영지침은 선수의 경제적 권리와 자기결정권, 스폰서십 활동 및 초상권 전반에 대해 강력한 통제를 가하는 제도로 작동해 왔다. 협회의 기존 규정은 국가대표 경력과 특정 연령 조건을 충족한 선수만이 비국가대표 신분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제한하였으며, 협회의 사전 승인 없이는 개인적인 후원 계약이나 광고 활동이 불가능하도록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선수들은 국가대표 체계를 벗어나 국제무대에 참여할 수 없었고, 국가대표 신분을 얻더라도 다시 경제적 자율성과 개인 권리를 제한받는 이중의 제약에 처하게 되었다. 이는 선수들의 커리어 선택과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구조적 문제를 초래하였다.
특히 협회가 선수들의 개인적 권리를 엄격히 제한하여 스타 선수 중심의 스폰서십 수익에 의존하면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구조적 모순이 드러난다. 실제로 이번 사태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대한배드민턴협회는 기부금 수입은 전무하고 지정기부금단체로 등록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방제일, 2024.08.09.; 임성빈, 2024.08.09.). 이는 협회가 외부 재원 확보에는 실패한 반면, 선수들의 스폰서십 수익에 구조적으로 의존해 운영비를 충당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결과적으로 선수 개인의 경제적 권리를 협회 운영의 재원으로 전유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한국의 제도적 통제는 글로벌 배드민턴 운영 구조와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의 국제 배드민턴 시스템은 개별 선수가 Super 1000, 750, 500 등 다양한 국제대회에 연중 참여하며 개인 랭킹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즉, 국제대회 참가 자격과 활동은 세계랭킹과 같은 성과 지표에 의해 결정되며, 국가대표 제도와 같은 국가적 개입의 여지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대표 시스템은 시장 중심의 프로페셔널 스포츠 운영 원칙과 달리, 선수들의 국제 경쟁력을 국가적 틀에 강제로 종속시키는 구조적 역진성을 보여준다.
이 행정적 규제는 ‘국가대표’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념적 질서와 연결되어 작동한다. 협회와 체육계 인사, 그리고 언론은 ‘희생’, ‘공동체’, ‘보은’과 같은 도덕적 언어를 동원하여 선수들의 시장 기반 권리 요구를 ‘이기적 개인주의’로 재구성하는 집단주의적 담론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였다. 특히 "대표팀의 울타리 없이는 안세영도 없었다"는 방수현의 발언은 선수 개인을 국가가 배출한 존재로 환원하고, 자유로운 경제적 활동의 제한을 ‘도덕적 책무’로 정당화하는 전형적 사례이다. 이는 Van Leeuwen(2007)의 도덕적 정당화 전략(moral evaluation)과 Fairclough(2003)의 규범적 언어 실천(normative discourse practice) 개념에 부합하며, 시장 기반의 개인적 주체성을 공동체 윤리로 포섭하는 통치 담론의 대표적 형태이다.
이 통치 담론에 최초로 균열을 일으킨 것이 바로 안세영의 저항 발화였다. "대표팀에서 나간다고 해서 올림픽에 못 나가는 건 너무 야박하지 않냐"는 그의 발언은 단순한 감정적 호소를 넘어, 공공성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권리를 억압해 온 기존 제도적 질서에 대한 헤게모니적 도전이었다. 이 발언은 언론과 여론의 큰 주목을 받으며 사회적 논란과 담론적 재구성의 과정을 촉발하였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는 협회의 규정을 "복종을 강요하는 구조"로 공식 규정하며 총 16개 항목의 제도 개선을 권고하였고(문화체육관광부, 2024.10.31.),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현안 질의에서도 민형배·신정훈 의원 등이 규정의 위헌적 요소를 강력히 지적하며 제도 개혁을 촉구하였다. 결국 협회는 복종 조항과 공로·연령 제한 조항을 폐지하는 등의 규정 개정을 단행하였다. 이는 Fairclough(2003: 91)가 말하는 ‘의미 투쟁(struggle over meaning)’이 사회적 변화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정이 근본적인 구조적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24년 12월 개정된 국가대표 선발규정은 비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복종’ 용어를 삭제하였지만, 초상권 및 후원활동 통제 조항(제9조)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따라서 국가대표 선수는 경기복 착용, 장비 사용, 후원 계약의 사전 승인 등 협회의 제한적 틀 안에서 활동해야 하며,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주요 국제대회 출전을 위해 다시 국가대표 신분을 획득해야 하는 선수들은 여전히 협회의 통제 구조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는 Fairclough(2013: 176)가 지적한 ‘이데올로기의 지속성과 제도의 관성’이라는 사회적 실천의 특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사례이다.
결론적으로, 안세영 사례는 단순히 특정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스포츠가 직면한 국가주의적 운영 체계, 글로벌 시장 중심의 스포츠 질서,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공공성 담론이 교차하며 충돌하는 구조적이고 이념적 문제를 드러낸 계기였다. 이 사건은 제도의 민주화와 선수 주체성 회복을 향한 의미 있는 균열을 형성하였으며, 향후 한국 스포츠 통치 질서 재구성의 가능성을 전망하게 하는 중요한 분기점(critical event; cf. Fairclough, 2003)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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