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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휴전 그리고 중지


스포츠는 경쟁이라는 형식이 만들어내는 서사이다. 그 형식 가운데 무엇을 강조하는지에 따라 승자와 패자 그리고 경쟁이 갖는 의미는 달라진다.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의 스포츠가 멈춰버린 지금, 코로나가 던지는 궁극의 질문에 올림픽은 어떤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고대사회의 제의로서 스포츠와 고대 그리스 올림픽을 탐색해 본다.

▣ 삶과 죽음의 은유로서 제의적 스포츠

수메르, 이집트, 미케네 등 짧게는 기원전 1000년, 길게는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문명이 남긴 무덤과 신전에는 레슬링, 복싱, 칼싸움 등 오늘날 격투 스포츠에 해당하는 미술품들이 남아 있다.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에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전사한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추모하기 위해 여덟 가지 스포츠 경기로 구성된 장례 경기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고대사회 사람들은 장례행사에서 스포츠 경기를 펼친 것이다. 오늘날 휴식과 레크리에이션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으레 달리기 시합을 하거나 축구와 같은 구기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은 낯설지 않지만, 죽은 자를 기리는 장례식에서 스포츠 경기를 개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레비스트로스가 쓴 ‘야생의 사고’는 고대 사회 제의(祭儀)로서 스포츠에 대한 상상력을 부여한다. 우리가 제사에서 절을 하고, 음식을 올리고, 술을 따르는 것은 망자를 살아있는 것처럼 대함으로써 “죽음으로 인해 잃은 것이 없다”란 상징적 의미를 재현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망자가 위로받으면 수호 정령이 되어 산 자를 지켜준다고 믿는 것이다. 북아메리카의 폭스 인디언이나 알콘 킨 족은 이 제사를 스포츠의 형식을 통해 재현한다. 이들의 제의적 스포츠는 승패가 불확실한 경쟁이 아니라 죽은 자가 이기도록 정해진 일종의 역할극이다. 게임에서 승리는 상대를 ‘죽이는 것’을 상징한다. 그 때문에 격투기든, 볼 게임이든 양 진영 간의 대결은 한 쪽은 산 자, 나머지 한 쪽은 죽은 자로 정해진다. 대결의 승리는 언제나 ‘죽은 자’의 몫, 망자 측이 산 자를 죽임(승리)으로써 자신들이야말로 살아있다고 믿게끔 하는 게 이 제의의 목적이다. 고대 문명의 무덤 속 격투기 장면들 또한 순수한 스포츠의 경쟁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은유가 담긴 제례의식이 아니었을까.

오늘날의 스포츠는 승패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경쟁을 통해 우월성을 확인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고대의 사람들은 스포츠란 형식을 빌려 풍작과 다산, 질병 치유, 이웃과의 친선과 같은 전혀 다른 서사를 만들었다. 그들은 산 자는 죽은 자가 되고, 죽은 자는 산 자가 되는 역할 바꾸기(role reversal)로 삶과 죽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였다. ‘승리’가 아닌 ‘패배’를 선택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기원하였다.

▣ 신을 찾아 걸었던 순례의 길, 고대 올림픽

기원전 776년부터 약 1200년 동안 그리스에서 벌어진 올림픽 경기도 제의적 의미를 지녔었다. 스포츠의 승부가 정해진 건 아니었지만 경기는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에게 바쳐졌다. 올림픽을 위해 떠나는 것은 스포츠 축제를 즐기는 목적도 있었지만, 가장 신성한 장소, 알티스 숲을 찾아 떠나는 순례 여행이기도 했다. 초창기 인근 도시국가에 그친 순례 행렬의 범위는 후대에 이르러 해상과 육상을 통해 지중해 서쪽 스페인에서부터 아프리카 북부 지역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이 모여드는 대규모 축제로 확대되었다. 전쟁이 일상이었던 그리스인들에게 올림피아 평원으로 가는 순례 길은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령들이 각 도시국가를 돌면서 선포한 올림픽 휴전(Olympic Truce; ékécheiria) 덕분에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올림픽 휴전은 신을 찾아 떠나는 성스러운 순례 길을 보호하려는 조치였던 셈이다. 그러나 신성한 종교적 의례였던 고대 올림픽도 세속화 문제를 앓았던 건 마찬가지, 그리스 후기에 이르러 심판을 매수하거나 상대 선수에게 뇌물을 줘 승부를 조작하는 등 승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만연하였다. 선수에게 과도한 보상을 하고, 전문 선수를 키우는 직업화, 상업화도 문제가 되었다.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였던 유리피데스는 “그리스 전체에 퍼져 있는 수많은 폐단 중에 운동가의 경기만큼 나쁜 것은 없다"라고 비판할 만큼, 후기 그리스 사회의 올림픽은 골칫거리고 전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월적 존재가 산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에 기초했던 이 제례 경기는 1200년에 가까운 293회의 올림피아드 동안, 그리스가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 이후에도 그 명맥을 유지하였고, 393년 로마의 기독교가 그리스의 다신교 숭배를 금지하면서 비로소 멈춰 섰다.

▣ 새로운 가치에 대한 상상, 환기가 필요한 올림픽 경기

1896년 시작한 근대 올림픽은 인간의 조화로운 발달, 평화로운 국제사회 건설, 인간의 존엄성 보존과 같은 경쟁 이상의 인본주의적 가치를 내 걸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스포츠를 통한 국가 간 무한 경쟁, 이를 위해 각국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엘리트 스포츠에 쏟아 부으며 올림픽에 참가할 선수를 육성하고, 화려한 올림픽의 스펙터클은 비영리 단체인 IOC를 여느 다국적 기업 못지않은 영리단체로 만들어 놓았다. 국가까지 개입하여 선수들에게 금지 약물 사용을 종용하고, 협회는 조직적으로 그 사실을 묵인하며, 개최지 선정을 위해 IOC 위원들에게 로비까지 이루어지는 등, 오늘날의 올림픽은 세속적 가치에 매몰되어 버렸다. 스포츠가 그것을 배태한 사회의 핵심 윤리를 반영한다고 했을 때, 국가들이 자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경쟁에 몰두하고 화려한 스펙터클에 집착하는 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국가주의와 상업주의의 숭배야말로 오늘날의 올림픽을 지속케 하는 원동력이란 얘기다.

지난 120년 동안 올림픽은 국가주의와 상업주의에 그 초점을 맞추어 왔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주변의 모든 일상성들이 더 큰 사회적 물결에 휩쓸려 언제든지 멈춰 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올림픽의 중지가 국가 간 과도한 경쟁과 상업화 탓은 아니다. 그러나 멈춰 선 올림픽은 20세기로부터 21세기 초로 이어진 짧은 기간 동안 스포츠란 제의가 숭배해온 가치들에 대해 환기를 요구하는 듯하다. 성스러운 제의가 사라진 20세기 올림픽, 코로나 이후 올림픽의 제의는 어디에 받쳐져야 할까. 치열했던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올림픽이 다가오면 세속의 문제를 제우스의 신탁(oracle)에 맡기고 휴전을 선포했던 것처럼, 코로나 사태가 근대 올림픽의 이상인 인류애, 평화, 존엄과 같은 인본주의적 가치로의 회귀 그리고 환경, 안전, 지속 가능성 등 새로운 서사를 상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올림픽의 중지가 새로운 전환점이 되길 기대해 본다.


서울스포츠 2020년 5월호 No. 355 스포츠잡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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