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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 - 이태문



운동회는 바로 전통의 재확인을 통한 근대국가의 규율 창출에 이바지한 대표적인 장치이다. 메이지 국가의 지배권력층들은 이데올로기 재창출의 장치로서 학교라는 근대의 공간 속에서 그들이 꿈꾸는 근대국가 일본에 적합한 몸(신체)를 만들기 위해, 즉 근대 국민을 빚어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전략이 집약적으로 발동된 장이 '운동회'의 공간이어다.


우리에게도 '운동회'는 있었다. '메이드 인 재팬'의 이른바 일제가 뿌리내렸다. 지금도 청군과 백군으로 갈라져 목이 취어라 응원전에 열을 올렸지만, 무대가 '광화문 사거리', '시청 앞'으로 바뀌고 '이겨라'라는 함성이 '대한민국'으로 변해도 누구 하나 의심하지 않았다. 이건 '애국'이며, '축제'라고 생각했다. 무엇을 위한 '장치'이고, 어디를 향한 '몸'부림인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군사독재의 장기집권이 끝나면 민주사회의 '꽃'이 피고, 모두가 바라던 알찬 '열매'를 나눠먹을 줄 알았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속빈 강정의 문민사회는 병약한 국민을 줄줄이 낳더니 급기야 표류하기 시작하였다. 한때 미덕이었던 규율과 통제는 군사독재 시대의 악덕으로 낙인찍혀 더 이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규율이 없는 축제, 통제되지 않는 '보이기'는 숱한 부작용을 빚어 내고 파행하는 파탄으로 치달았다. 그 반발로 군사독재의 '규율과 통제'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제2의 박정희가 재림하기를 꿈꾸는 이들도 나타났다.


이제 우리 '운동회'의 원점을 다시 점검하면서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집단 유희'의 틀을 모색해야 한다. 부정적인 '색안경'을 벗고, 근대의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차근차근 캐내면서 우리 '몸'의 발자취와 그 냄새를 밟아볼 필요가 있다. 요시미 슌야 외 - 운동회 근대의 신체 중, 옮긴이의 글 이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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