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적 비교: FA 제도의 억압적 설계와 리그 간 동형화
- 한승백
-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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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FA 제도가 실질적 효력을 갖게 되었지만, 보류조항의 완전한 폐지나 선수의 완전한 계약 자유는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의 FA 제도는 선수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확대한 것이 아니라, 보상 규정과 보호선수 제도, 샐러리캡 등 구단의 통제 권한을 유지하는 다양한 하위 규정과 결합하여 제한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FA 제도가 명목상 내세우는 선수 권리 보장이라는 공식적 가치와 실제 제도의 제한적 운용 사이에서 나타나는 괴리는 대표적인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프로스포츠 리그마다 구체적인 제도의 설계와 운영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면서도, 공통적으로 선수의 자유로운 이동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구조로 나타난다. 이는 ‘리그 우선’, ‘구단 우선’의 로직이 반영된 것인데, 선수 이동의 자율성보다는 리그의 운영 안정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제도적 선택이다. 각 주요 리그의 사례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MLB는 선수의 FA 자격 취득에 최소 6년의 보류기간을 요구한다. 이는 선수가 팀의 독점적 통제를 벗어나 자유 계약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긴 기간 팀에 묶여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MLB는 퀄리파잉 오퍼(Qualifying Offer, QO) 제도를 운영하여, FA 이적을 간접적으로 제한한다. 원소속 구단이 FA 선수에게 리그 상위 125명 평균 연봉(2024년 기준 약 2,105만 달러)을 기준으로 한 1년 계약을 제시하며, 선수가 이를 거절하고 타 구단과 계약할 경우 원소속 구단은 보상 지명권(compensation pick)을 받고, 영입 구단은 다음 해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 드래프트 지명권은 구단이 장기적 전력 구성을 위해 유망한 신인을 확보할 수 있는 핵심 자산이기 때문에, 구단들은 FA 선수 영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선수의 이동을 간접적으로 제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Couture, 2016; Zimbalist, 1992).
둘째, NBA는 다른 주요 리그와 달리 선수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FA 자격 취득을 위한 보류기간이 비교적 짧아 대부분의 계약이 3~4년 단위로 이루어지며, 등급제나 보상선수 제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NBA의 샐러리캡은 절대적 제한인 하드캡이 아니라, 일정 조건 아래 상한선을 초과하는 계약이 가능한 소프트캡으로 운영된다. 버드권(Bird Rights)이나 미드레벨 예외(MLE)와 같은 예외 조항을 통해 팀들이 핵심 선수 유지 및 선수 영입에 큰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사치세(Luxury Tax)는 과도한 지출을 일정 수준 억제하면서도 재정 여력이 있는 구단들에게는 샐러리캡 초과 계약을 통한 적극적인 선수 영입을 허용하고 있다(Coon, 2024; NBA 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 2023).
셋째, 일본 NPB는 MLB나 NBA와 달리 매우 긴 FA 자격 취득 기간을 요구한다. 고졸 선수는 8년, 대졸 및 사회인 출신 선수는 7년을 채워야 국내 FA 자격을 얻을 수 있고, 해외 이적을 위한 FA 자격은 모든 선수에게 9년이다. 샐러리캡이나 럭셔리세는 없으나, 명확한 등급제와 보상선수 제도를 운영한다. 팀 내 연봉 순위에 따라 A등급(연봉 상위 3위), B등급(연봉 4~10위), C등급(연봉 11위 이하)으로 나누며, 특히 A·B등급 선수는 막대한 금전 및 인적 보상을 제공해야 하므로 FA 권리 행사가 크게 제한된다(Nippon Professional Organization, 2024).
넷째, KOVO(한국 프로배구)는 FA 자격 취득을 위해 5시즌, 해외 진출 시 7시즌의 보류 기간을 요구한다. KOVO는 기본연봉에 따라 등급을 구분하고 A등급 선수는 연봉의 200%와 보호선수 외 선수 1명, 또는 연봉 300%의 막대한 현금 보상을 요구하여 사실상 이적을 어렵게 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KOVO, 2024).
한편 KBO와 WKBL은 KOVO 및 NPB와 유사하게 높은 등급의 선수들에게 강력한 보상 및 보호선수 규정을 통해 핵심 선수의 이동을 억제하는 제도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한국야구위원회, 2024; 한국여자농구연맹, 2024). 아래의 <표 1>은 주요 프로스포츠 리그의 FA 보상 규정, 샐러리캡 구조, 그리고 최근 5년 FA 이적률을 비교한 것이다. 본 표의 수치는 공식적인 통계자료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각 리그의 공개된 규정 문서 및 주요 언론 보도, 선행 연구를 종합하여 구성한 것으로, 일부 수치는 추정치이거나 시즌별 변동 가능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구체적 수치보다는 리그 간 제도 설계의 상대적 차이와 구조적 경향을 비교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리그 | FA 보상 규정 | 샐러리캡 구조 | 최근 5년 FA 이적률 |
MLB | QO 거부 시 보상 드래프트픽 부여 | 소프트캡 + 럭셔리세 | 68% |
NBA | 등급제 없음, 보상 없음 | 소프트캡 + 럭셔리세 | 75% |
NPB | A: 연봉 50%+보호선수 or 80% B: 연봉 40%+보호선수 or 60% C: 보상 없음 | 팀별 자율예산 캡 없음 | 18% 이하 |
KBO | A: 연봉 200%+보호선수 or 300% B: 연봉 100%+보호선수 or 200% C: 연봉 150% (보상선수 없음) | 소프트캡 + 럭셔리세 | 25~28% |
WKBL | 계약금 300% + 보호선수 4~6명 외 1인 | 하드캡 14억 원 | 15% |
KOVO(남) | 연봉 200% + 보호선수 5명 외 1인 | 하드캡 31억 원 | 11~13% |
KOVO(여) | 연봉 200% + 보호선수 6명 외 1인 | 하드캡 23억 원 | 11~13% |
위 <표 1>은 보류조항과 보상 규정이 강력하게 설정될수록 선수의 자유로운 이동이 구조적으로 제한됨을 최근 5년간의 FA 이적률을 통해 뚜렷하게 드러낸다. 특히 보상 금액과 보상선수 규정이 과중하고, 샐러리캡 구조가 엄격한 리그일수록 선수의 이적률은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NBA는 등급제나 보상선수 제도가 없으며 소프트캡과 다양한 예외 규정 덕분에 선수 이동이 가장 자유로운 리그로, 이적률이 75%로 가장 높다. 반면, 보상 조건이 까다로운 NPB, WKBL, KOVO의 경우 보상선수 및 금전적 부담이 매우 크고 하드캡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이적률이 각각 18% 이하(NPB), 15%(WKBL), 11~13%(KOVO)로 현저히 낮다. 특히 NPB와 KOVO는 선수 등급제와 높은 보상 부담으로 인해 구단이 지불해야 하는 이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공통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아시아권 프로스포츠 리그에서 FA 이적률이 낮게 나타나는 중요한 구조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표 1>에서 주목할 점은 보상 규정뿐 아니라 샐러리캡의 유형이 선수 이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드캡 방식의 샐러리캡은 리그가 정한 연봉 총액 한도를 절대적으로 초과할 수 없도록 엄격히 제한하여, 고액 FA 선수와의 계약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구단이 고액 FA 선수를 영입하려면 기존 선수단 연봉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조정하거나 주요 선수와의 재계약을 포기해야 하므로, 하드캡 구조에서는 이적 가능성이 극단적으로 제한된다(Leeds & Kowalewski, 2001; Rosen & Sanderson, 2001). 반면 소프트캡과 럭셔리세 구조는 샐러리캡 상한 초과 시 추가 세금을 부담하는 방식이므로, 재정적 여력이 있는 구단에게 더 많은 전략적 선택지를 제공한다. 즉 소프트캡 방식은 선수의 자유로운 이동을 촉진하는 구조로 작동한다(Fort & Quirk, 1995; Vrooman, 2009).
결과적으로, 보류조항과 보상 규정이 선수의 이동 가능성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제약 요인이다. 그리고 샐러리캡의 형태와 강도는 이와 결합하여, FA 시장의 구조적 제한성을 추가적으로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한승백, 권헌수( 2025). 한국 여자 프로배구 FA제도에 내제된 구조적 통제. 한국융합과학회 14(7) 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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