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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프로배구 FA제도의 다층적 통제 메커니즘

한국배구연맹(KOVO)의 ‘자유계약선수관리규정’은 표면적으로 선수에게 자유계약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로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층적인 제도적 장치들이 결합하여 선수의 이동과 계약의 자율성을 강력히 제한한다. 특히 FA 자격요건 설정, 보상 구조, 보호선수 제도, 샐러리캡 등 서로 연결된 규정들이 다층적으로 작용하여, 선수의 계약 자유를 형식적이고 제한적으로 만드는 제도적 역설을 드러낸다. 먼저 FA 자격 취득의 전제가 되는 ‘자유계약선수관리규정 제3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자유계약선수(이하 FA선수라 한다)란 등록 연한이 6시즌(6년)을 초과한 선수로 한다. <자유계약선수관리규정, 제3조 제1항>

     

이는 선수에게 최소한 6시즌 동안 원소속 구단과의 배타적 계약 관계를 강요하는 구조로서, 이 기간에는 선수의 자유로운 이적과 타 구단과의 계약 협상권이 근본적으로 봉쇄된다. 이러한 조건은 ‘KOVO 규정 규약 제50조(권리보유 선수)’에서 더욱 명시적으로 나타난다.

     

① 권리보유 선수란, 구단이 선수와 다음 시즌 선수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을 유지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보유한 선수를 말한다. ② 구단의 선수에 대한 권리보유 기간은 FA자격 (재)취득 시까지로 한다. <KOVO 규정 규약, 제50조>

이 규정은 KOVO의 FA 제도가 형식적으로 ‘보류조항(reserve clause)’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지만, 사실상 MLB의 보류조항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FA 자격 취득 전까지의 기간을 제도적으로 원소속 구단의 배타적 권리보유 기간으로 설정해, 선수의 이동 자유를 실질적으로 억압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FA 자격 취득 이후의 규제적 구조이다. KOVO의 FA 제도는 자격 취득 이후에도 선수의 이적 가능성을 다층적으로 제한하는 보상 규정을 설정하고 있다. 이미 앞 절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A등급 선수는 전 시즌 연봉의 200~300%에 달하는 막대한 금전 보상과 보호선수 지명이라는 부담을 수반해 실질적인 이적이 극히 어렵다. 이는 제도의 중심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최고 수준 선수들의 이적 가능성을 오히려 가장 강력히 억제하는 제도적 역설로 작동한다.


이러한 보상 규정은 ‘보호선수 제도’와 결합하여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보호선수 제도는 각 구단이 소속 선수 중 핵심 선수나 유망주를 미리 지정하여, FA 시장에서 타 구단이 지명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다. 특히 여자부의 경우 보호선수로 지정 가능한 인원이 6명으로 설정되어 있어, FA 시장에서 타 구단이 핵심 전력이나 유망주를 얻는 기회를 현저히 낮추고 있다. 결국 FA를 통해 이적을 시도하는 구단은 상당한 재정적 부담과 동시에 인적 손실 가능성을 동시에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여기에 샐러리캡 제도가 결합하면 선수의 이적 가능성은 더욱 심각히 제약된다. KOVO의 샐러리캡은 연맹 이사회에서 결정된 총액 한도 내에서만 선수단 연봉 지급을 허용하는 강력한 하드캡(Hard Cap) 구조로, 2023–2024시즌 총 28억 원(샐러리캡 19억 + 옵션캡 6억 + 승리수당 3억), 2024–2025시즌 총 29억 원(샐러리캡 20억 + 옵션캡 6억 + 승리수당 3억), 2025–2026시즌 총 30억 원(샐러리캡 21억 + 옵션캡 6억 + 승리수당 3억)으로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샐러리캡은 단순한 예산 관리 장치를 넘어 FA 보상 규정과 결합하여 더욱 강력한 선수 이동 제약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구단이 샐러리캡 한도 내에서 고액 FA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선수단 연봉 구조를 대폭 조정하거나 주요 선수와의 재계약을 포기해야 하므로, 많은 구단이 고액 선수 영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제도적 상호보완성(institutional complementarities)’의 사례로, 샐러리캡과 보상 규정의 상호작용이 선수의 이적 자유를 더욱 강력히 제한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Hall & Soskice, 2001; Thelen, 2004).


결국 KOVO의 FA 제도는 표면적으로는 선수의 계약 자유를 보장하지만, 보상 규정, 보호선수 제도, 샐러리캡과 같은 상호보완적 제도들이 결합하여 선수의 계약 자유를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 같은 제도적 장치들은 ‘리그의 안정성’, ‘경쟁 균형’, ‘재정 건전성 유지’와 같은 명분을 내세워 정당화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구단 중심의 권력 구조를 강화하는 억압적 메커니즘으로 기능한다. 이는 형식적 자유와 실질적 통제 사이의 괴리를 더욱 증폭시키는 대표적 ‘제도적 역설’이다.


한승백, 권헌수( 2025). 한국 여자 프로배구 FA제도에 내제된 구조적 통제. 한국융합과학회 14(7) 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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